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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9단은 이날 삼성 수요일 사장단 협의회에 강연자로 나서 50여년에 이르는 자신의 바둑인생을 풀어놓았다.
그에게 바둑은 인생의 전부였다. 만 4살에 바둑돌을 집어 든 그는 5살에 서울로, 10살에는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바둑만 알았던 그에게 바둑의 정신을 알려준 이는 일본에서 스승으로 만난 바둑계 원로 ‘세고에 겐사쿠’였다.
스승의 제자가 된 것은 뛰어난 바둑 실력덕분이다. 핸디캡을 두고 하는 대국서 내리 세 번을 이겨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작 스승이 강조한 것은 바둑 실력이 아닌 바둑의 정신이자 인간됨이었다.
그는 “바둑에 앞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조 9단이 선배들의 꾐에 넘어가 10엔짜리 ‘내기 바둑’을 한 사실이 들통나자 “바닥의 정신을 지키지 못했다”며 파문 시킨 일화도 소개했다.
물론 한 달 뒤 다시 제자로 복귀했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조 9단은 “스승이 강조한 바둑 정신을 평생 인생의 좌우명으로 살아왔다”고 전했다.
조 9단은 이날 첫 에세이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출간한 사실도 소개했다. 그는 “여러 계기로 스승들의 정신을 기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도 냈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그는 “바둑판에서 ‘생각의 위대한 힘’을 배웠다”며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생에서는 승패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비록 이기지는 못했더라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9단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최근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한다“면서 ”이 것 역시 바둑정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자이자 후배인 이창호 9단이 자신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로 바둑에 임하는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조 9단이 특별히 삼성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시간에 걸쳐 특별한 주제 없이 자신의 바둑 인생을 이야기했다”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바둑의 정신, 사람이 돼라는 의미의 강연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강연을 한 조 9단은 바둑의 불모지인 한국을 세계 바둑 1위로 만든 전설의 기사다. 1980년대 한국 바둑을 주름잡다 1989년 9월 세계 프로바둑선수권 대회인 제1회 응창기배에 나가 중국의 고수 녜웨이핑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에 이어 한국바둑을 전세계에 빛낸 이창호 9단을 키워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