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일어나는 볼썽 사나운 형제간의 권력 다툼이 재계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창업주가 물러나고 오너 2~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재벌가는 대부분 홍역을 겪었다. 롯데가의 형제 다툼에서 보듯 ‘피보다 경영권, 돈이 더 붉고 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오너 2~3세간 후계 구도의 향배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재벌 기업들은 잠복된 ‘오너 리스크’때문에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 2000년 현대家 ‘왕자의 난’ 대표적
재계 집안싸움으로는 현대가의 ‘왕자의 난’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후계자로 차남 정몽구 현대차(005380)그룹 회장과 5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을 놓고 저울질했다. 정몽헌 회장이 낙점됐지만 정주영 창업주가 와병 중이던 2000년 정몽구 회장이 포문을 열면서 이른바 ‘왕자의 난’이 터졌다.
정몽구 회장은 인사를 단행해 정몽헌 회장의 측근들을 전보시켰고, 결국 그룹이 분할되고 나서야 다툼은 일단락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룹에 남긴 상처는 깊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여파는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고, 정부와 채권단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진 문책 요구를 수용해 모두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그룹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등으로 계열분리의 길을 걷게 됐다. 특히 현대그룹을 맡은 정몽헌 회장은 2003년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두산도 형제경영 삐그덕.. 금호家 갈등 끝에 계열분리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그룹도 경영권을 둘러 싼 집안싸움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주부터 시작했던 ‘형제 경영’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박용곤 명예회장 이후 차남인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올랐다. 이후 2005년 동생인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
동생이 그룹 총수에 오르는 것에 반발한 박용오 회장이 그룹 비자금 횡령 등의 내용을 검찰에 제출한 것. 집안 싸움에 검찰까지 끌어들이면서 그룹 전체를 흔들리게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룹 회장에 대한 욕심에 형제들과 등을 돌린 박용오 회장은 결국 가문에서 제명당하고, 2009년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금호그룹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창업주 뜻에 따라 ‘형제 경영’을 시작했지만 삼남인 박삼구, 사남 박찬구 회장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급기야 계열 분리를 거쳐 갈라섰다.
형제간 갈등은 2009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표출됐다. 대우건설 인수에 반대해 온 동생 박찬구 회장이 자신이 맡고 있던 금호석유(011780)화학의 분리경영을 추진했고, 이에 대해 박삼구 회장이 크게 반발해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자신도 동반 퇴진했다.
이 같은 박삼구·찬구 회장의 갈등은 그룹이 계열분리 된 이후에도 소송전을 이어가며 형제간 갈등은 지금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효성, 형제간 소송전.. 재계, 승계과정 불가피 시각도
효성가도 형제간 첨예한 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형제간 갈등을 겪으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조성래 효성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큰 형인 조현준 사장,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 등과 경영에 참여해오다 2013년 2월 돌연 효성 부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룹과 결별했다. 작년 1월에는 자신과 아들 명의의 회사 주식을 전부 매도하고 효성과의 지분관계까지 정리했다.
하지만 조 전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사장 등을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효성(004800)그룹이 자신을 음해하고 사내 불법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운다는 주장도 폈다. 가족들과 등을 돌린 조 전 부사장을 두고 효성그룹은 회사 경영에 전반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이 몸담았던 회사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는 데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계 전문가들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가문의 사업으로 자리잡은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전문경영인 제도가 정착돼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대주주=경영자’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4세 이후로 승계가 이어지면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채용 사례들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