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점거에 기업 피해액만 수백억인데…정부 방임에 '악순환'

정병묵 기자I 2022.08.23 19:39:38

화물연대 노조, 하이트진로 서울 본사 점거농성 8일째
지방 공장 점거 이어지면서 피해액만 약 200억
CJ대한통운·쿠팡 노조 본사 농성 이후 또 재발
"막대한 피해 보고만 있나…공권력 투입해야"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하이트진로(000080) 서울 본사를 점거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지난해 말부터 민주노총 산하 CJ대한통운(000120) 택배노조 및 쿠팡 물류센터노조 등의 점거 농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과격 시위로 기업들은 막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노조가 명백히 현행법을 어기고 있는데도 정부는 질서 유지 의무를 방임,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8일째 점거…하이트진로 “피해액 100억~200억원 추정”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는 지난 16일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시위를 8일째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운임 인상 △손해배상 청구·가압류 철회 △해고자 전원 복직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본사 앞에 조합원 1000여명이 집결해 영동대교 방향 7개 차로 중 3개를 점거하면서 시민들의 불편까지 초래했다.

하이트진로 사태는 지난 3월 하이트진로 화물 운송위탁사인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2명이 화물연대에 가입한 후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하이트진로 경기 이천공장·충북 청주공장의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2명은 화물연대에 가입하고 유가 폭등에 따른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며 지난 6월 각 공장에서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조합원 12명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화물연대는 지난달 22일과 23일 하이트진로 이천, 청주 공장에서 집회를 벌였다. 법원이 이천 공장에 대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인용하자 이들은 이달 2일 강원 홍천 하이트진로 강원 공장으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소주, 맥주 등 제품 출하가 막히면서 직원들이 나서서 길을 트며 간신히 제품이 출고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올해 노조의 회사 사옥 점거는 하나의 ‘코스’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조합원들은 지난 2월 10일부터 19일간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 등을 요구하면서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들도 지난 6월 23일부터 31일 동안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 텐트를 치고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CJ대한통운 본사 직원들은 3주 가까이 제대로 출근하지 못했고 쿠팡 본사 인근 주민들은 확성기 농성으로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노조의 잇단 불법 사옥 점거로 회사가 입은 금전적 피해도 막대하다.

화물연대 농성 이후 하이트진로는 소주와 맥주 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 하루에 맥주 11만~12만 박스를 출고하던 강원공장에서는 노조가 공장 진출입로를 막아선 직후인 지난 2~3일 단 1박스의 맥주제품도 출고하지 못했다. 회사는 화물연대의 파업과 집회로 인한 직접 피해액이 60억원, 간접 피해액은 100억~2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추산한다.

CJ대한통운의 경우 현재 노조와 부속합의서 채택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본사 점거로 약 1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보고 있다. 회사는 노조원 88명을 상대로 한 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10일 민주노총 소속 택배노조 조합원 200여명이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사옥에 진입하기 위해 본사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고정문이 파손되는 모습. (영상=CJ대한통운 제공)
◇“공권력 투입해야”…정부는 아직도 탁상공론만

하이트진로는 답답함을 호소하며 정부가 공권력을 적극 투입해 대응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화물연대의 이천·청주·홍천 공장 불법 시위에 이은 서울 본사 무단 점거 등 불법 행위는 현재 노사 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공권력이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사태가 발생한 지 7일째인 지난 22일에야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갖고 사태 장기화 시 공권력을 투입할 것인지 등 대응책 마련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해결에 나서 달라는 건 노조 측도 마찬가지다. 공공운수노조는 최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고공농성 해결 촉구 노동·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에서는 노동계의 과격한 점거 농성에 대해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든지 적극 해결의 장을 만들든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경찰인력이 현장 질서 유지 정도의 대응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는 점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김철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지원팀장은 “하이트진로 건의 경우 본사까지 불법 점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올해 초 택배노조 파업 당시 안일했던 정부 대응이 또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 문제가 아닌 불법 점거에 대한 형사 문제로 접근해서 퇴거 불응에 응하지 않을 시 퇴거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택배노조 파업 당시 유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사태 해결을 서로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하이트진로 사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공권력 투입뿐만 아니라 노사 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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