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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학살의 기억 잊은 적 없다"…베트남에서 온 103장의 청원서

조해영 기자I 2019.04.04 15:19:57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유가족 靑에 청원서 제출
"사과 원한다는 사실 분명하게 알리고 싶다"

4일 오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 등이 청원서 제출에 앞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해영 기자)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저는 8살에 한국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고 전쟁고아가 됐습니다.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 한국을 찾아 제 경험을 얘기했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씨)

베트남전쟁 당시 참전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생존자와 유가족 103명은 4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 앞으로 제출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정부에 집단 청원을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제출한 청원서에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희생자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 등 요구가 담겼다.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59)씨는 “학살 당시 8살의 어린아이였지만 그날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운을 떼며 “지난해에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로부터는 답을 듣지 못해 실망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직접 청와대에 전달하는 청원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또 다른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62)씨는 “이번에 한국을 찾기 전 고향 마을의 위령비를 찾아 향을 피우면서 제가 한국에서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밝히고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한국 정부는 파병 기간 32만 5000여 명의 한국군을 파병했다”며 “이들은 베트남 중부 5개 성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는 가족들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고 총과 수류탄을 피해 겨우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대두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 차원의 입장 발표가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들은 청원서를 통해 “2015년과 2018년에 피해자 일부가 직접 한국을 찾아 증언했지만 여러 번의 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는 사실을 청원서를 통해 분명히 알리고 싶다”라고 했다.

시민평화법정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임재성 변호사는 “생존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며 “청원인들은 정부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도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지난달 1일부터 15일까지 베트남에서 만난 생존자들은 학살 당시의 부상으로 팔을 쓸 수 없게 되거나 시력을 잃기도 했지만 서명만큼은 직접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라며 “청원에 참여하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도 함께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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