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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추진계획]산 넘어 산…여전한 자본확충 논란들(종합)

김정남 기자I 2016.06.08 15:59:37

한은의 수은 ''직접 출자'' 가능성 사라지지 않아
한은 "출자 없다"고 하지만…정부는 출자 무게
신보의 보증 비용도 한은이 부담…"비상식적"
특정 분야 지원 위한 발권력 남용 논란도 여전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산 넘어 산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구조조정 실탄 마련에 일단 손을 맞잡았지만, 논란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당장 수출입은행에 대한 한은의 직접 출자를 두고 기관간 이견이 나온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 ‘한은의 수은 출자’ 문구가 들어갔는데,이에 대한 정부와 한은의 생각에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한은 측은 “수은 출자는 없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은의 발권력이 인위적으로 동원된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돈을 찍어내는 권한을 가진 한은이 특정 부분을 지원하는 건 형평성 측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은 “출자 없다”고 하지만…정부는 출자 무게

정부가 8일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보면 “시장 불안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정부와 한은은 수은 출자를 포함해 금융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한다”고 명시돼있다.

수은 출자는 그간 구조조정 이슈의 핵심 중 하나였다. 정부, 특히 금융위원회는 은행에 대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보통주 자기자본비율 규제 때문에 한은의 직접 출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 현금출자(예산 편성)보다 부담이 적다. 구조조정의 공이 국회로 넘어가면, 정부 책임론이 비등해지는데 더해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도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은이 수은의 2대 주주라는 점을 들어 이를 앞장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지난 1976년 이후 12차례 수은에 출자한 적이 있다. 총 1조2000억원 규모다.

한은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대출과 달리 출자는 사실상 떼이는 돈이어서다. 이주열 총재는 직접 출자만큼은 막겠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손실 최소화’ 원칙에 비춰볼 때 중앙은행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까지 10차례 했던 3000억원 출자는 한은 독립성이 약했던 때 관행적으로 했다는 인식도 엄연히 있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7000억원)과 2000년(2000억원) 이후로는 출자 전례가 없다.

직접 출자의 전제인 ‘금융시스템 리스크 전이’ 상황을 어느 기관이 판단할지 명시되지 않은 것도 갈등의 뇌관이다. 한은 측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정부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발표를 통해 한은의 출자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관간 갈등이 아직 봉합되지 않은 것이다.

◇신보의 보증 비용도 한은이 부담…“비상식적”

한은의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한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 비용을 한은이 대기로 한 점도 논란거리다. 보증은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제3자의 재산으로 담보하는 제도다. 대출 회수 가능성을 높이려는 절차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 따르면 한은이 자금을 대면서 그 위험부담도 스스로 짊어지는 구조다. 한은의 부담이 더 커지는 데다, 그 설계 자체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자기 것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 성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한은이 돈을 대는데 신보가 보증하고, 그 보증재원은 또 한은이 메우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면서 “금융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긴다고 해서 100원이 200원이 되지 않는다. 결국 한은이 찍어내는 돈으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국회를 우회하도록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정 분야 지원 위한 발권력 남용 논란도 여전

발권력 동원 논란도 적지 않다. 한은이 대출이든 출자든 형식을 떠나 어쨌든 인위적으로 특정 분야(기업 구조조정)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로는 이렇다. 한은 측은 “통화량 총량은 변화가 없다. 필요 부분에 자금이 가면 다른 부분에서 흡수한다”(김봉기 한은 금융기획팀장)고 설명한다. 한은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유동성을 조절한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다 싶으면 통안채 등을 매각해 유동성을 흡수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통안채 등을 매입한다. 그 과정에서 시중의 그 어딘가 있던 돈이 기업 구조조정 분야로 옮겨가는 것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980년대 개발연도에 한은에서 무조건 발권해 부실기업의 손실을 메우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은은 세금 소요와도 같은 발권력 동원은 사회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는 뜻을 피력해왔다. 그런 점에서 한은도 발권력 남용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지원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과는 거리가 먼 부실 대기업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금융권 한 인사는 “앞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데, 손쉽게 발권력에 의존하는 행태가 자리잡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통안채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 지적도 나온다. 현재 통안채 금리는 1.4% 내외다. 한은의 대출 한도인 10조원에 단순 적용해보면, 연 1400억원 정도를 통안채 투자자에 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한편 한은 금통위는 이날 발표된 10조원 한도의 대출 규모를 최대한 이번달 중 회의를 통해 의결할 계획이다. 이후로는 자본 수요가 올 때마다 금통위 판단 하에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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