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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조+a' 유동성 공급 사각지대…저신용 건설사·비주택 사업장 '소외'

김성수 기자I 2022.10.28 19:01:20

ABCP 발행, 신용등급 A1만 가능…해당 안 되는 업체 ''수두룩''
책준·개발신탁·2금융권, 잠재위험 높아…비주택도 지원 빠져

[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에 사각지대가 있어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원책 세부내용을 보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동산 PF 보증지원 등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실제 PF 유동화 시장에는 책임준공형 사업장이나 제2금융권 PF 사업장 등 ABCP 방식보다 신용도가 낮고 위험도가 높은 PF 방식이 더 많다. 위기 발생시 이번 유동성 프로그램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이같은 사업장에 리스크가 터질 위험이 더 높다는 분석이다.

◇ ABCP 발행, 신용등급 A1만 가능…해당 안 되는 업체 ‘수두룩’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 및 한국은행은 지난 2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갖고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정책 세부사항을 보면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으로 시공사 보증 PF-ABCP 등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회사채 및 CP 매입한도를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확대 △PF-ABCP 차환 어려움 등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한국증권금융이 3조원 규모 유동성 지원 △한국은행 대출 등 적격담보대상 증권에 국채 외 공공기관채, 은행채 포함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보증 ABCP에 대해선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등 부동산 PF 시장 불안에 적극 대응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을 10조원 규모로 확대하는 내용이 있다.

PF ABCP는 말 그대로 PF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기업어음(CP)이다. 유동화전문회사(SPC)가 시행사의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ABCP를 발행하면, 건설사 또는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신용등급이 높은 건설사나 증권사가 ‘빚보증’을 서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ABCP 방식으로 유동화할 수 없는 사업장에 잠재 리스크가 더 높다고 지적한다. 우선 ABCP를 발행하려면 기업어음 기준 신용등급이 A1 이상인 초우량 지자체, 대형건설사, 증권사여야 한다.

한국신용평가의 ‘기업어음 및 단기사채 신용등급별 정의’를 보면 A1은 ‘적기상환 가능성이 최상급’인 경우다. 그보다 낮은 A2일 경우 ‘적기상환가능성이 우수하지만, 상위등급(A1)에 비해 다소 열위한 면이 있다’고 본다.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순위 10위권 주요 대형건설사 중 기업어음 신용등급이 A1인 곳은 삼성물산, DL이앤씨, 현대엔지니어링 뿐이다. 여기에 현대건설도 A1 등급에 포함된다는 의견도 있다.

(자료=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반면 포스코건설(A2+), GS건설(A2+), 대우건설(A2-), 롯데건설(A2+), SK에코플랜트(A2-)는 시평순위 10위권 건설사지만 기업어음 신용등급이 A1보다 낮다.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 건설사들 중 기업어음 신용등급이 A1인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이들 건설사보다 신용등급이 더 낮아서 위험에 더 취약한 중소형 업체들은 ABCP 발행이 아닌 만큼 이번 정부의 유동성 프로그램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A1 등급이어도 지자체가 발행한 ABCP가 대형건설사가 발행한 ABCP보다 신용등급이 더 높다. 그런데 이번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지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훼손된 만큼 대형건설사가 발행한 ABCP에 대한 수요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9개 대형 증권사들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ABCP 물량을 업계 내에서 소화하는 방식 등으로 단기자금 경색 문제 해소에 기여하기로 지난 27일 합의했다.

미래에셋증권·메리츠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하나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사장단은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건물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이같이 뜻을 모았다.

◇ 책준·개발신탁·2금융권, 잠재위험 높아…비주택도 지원 빠져

또한 ABCP보다 위험도가 더 높은 PF 유동화 방식도 있다. 예컨대 △책임준공형 PF △차입형 토지신탁(개발신탁) △신용보강 없이 준공 후 자산가치(감정평가금액)에 대한 담보력만 가지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다.

우선 책임준공확약이란 건설사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정준공일까지 대상 시설을 준공하겠다는 확약을 말한다. 책임준공 PF는 시공사가 건물을 준공하지 못하는 경우 신탁사가 대주단의 채무를 상환하거나 시공사를 교체해서 책임준공을 완료하겠다는 보증이다.

책임준공으로 신탁사가 PF 금융에 신용보강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사업비 조달 및 공사비 조달이 양호한지 여부 △시공사의 재무능력과 시공능력으로 건물 준공 능력 여부 검토 △설계도, 견적서 등을 검토해 공사비 적정 여부 검토 △공사비가 유보되는 경우 해당 공사비를 시공사가 책임지고 준공하는 능력 검토 및 보증서 발권이다.

책임준공을 위해서는 시공사의 신용등급이 회사채 발행기준 BBB 이상이어야 한다. ABCP보다 신용등급 기준이 낮다. 또는 시공사가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아 신용등급이 없어도 현금흐름이나 재무제표가 양호한 경우 신탁사가 이를 인정해서 시공사의 신용을 보강하기도 한다.

또한 차입형 토지신탁(개발신탁)이란 토지 소유주가 보유한 부동산에 신탁사가 자금을 투입해 부동산 개발사업을 시행한 후 이를 분양, 임대해 그 수익을 수익자와 나누는 방식이다.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처럼 자본력이 있는 대형신탁사가 주로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른 부동산신탁보다 수수료율이 높지만 분양이 잘 안 되거나 공사가 지연돼서 신탁사의 유동성 문제가 단기간에 악화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밖에도 신용보강 없이 준공 후 자산가치(감정평가금액)에 대한 담보력만 가지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 세가지 방식들 모두 ABCP보다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큰데, 이번 유동성 프로그램 지원대상에 빠져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로 문제가 생긴 ABCP는 신용도 최상위 업체들이 보증하기 때문에 PF 유동화시장에선 우량 상품에 속한다”며 “부실화 문제 등 사고가 터진다면 ABCP보다 신용도가 안 좋은 사업장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BCP로 유동화하지 못하는 책임준공형, 개발신탁, 2금융권 PF에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기 유동성 위기에 노출된 사업장에 HUG, 주택금융공사가 내년까지 총 10조원 규모 보증을 지원하는 방안도 전체 부동산시장을 커버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료=기획재정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개최 결과 캡처)
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보증서를 끊어주는 사업장은 오로지 ‘주택’만 해당된다.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근린생활시설, 물류센터와 같은 ‘비주택’은 해당사항이 없다.

부동산시장에는 주택 외에 비주택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에 유동성 위험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PF 사업자 보증 지원과 관련, 필요시 한시적으로 사업자보증 대상 확대·요건 완화 등을 추가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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