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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 역사강사는 이날 ‘W Lecture ‘역사 속 여성 영웅들’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강연에서 그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가치있는 선택을 통해 평범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독립운동가 감시가 상당히 심했다”며 운을 뗐다.
당시 일본은 독립운동가들을 상대로 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만들었다. 이 카드에는 해당인물의 사진과 개인정보, 키나 몸무게, 가족관계 직업 특징까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인물카드만 6264장. 그 카드 안에는 다양한 독립운동가가 있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했다.
이다지 역사강사가 집중한 인물은 바로 ‘안경신 의사’.
안 의사는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한 인물이다. 1920년 미국 국회의원 100명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독립단체들은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일제에 대한 저항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일제 식민통제기관 평남도청 등에 폭탄 던지는 거사를 계획했다. 이때 결사대원으로 5명을 모집했는데, 유일한 여성 지원자가 바로 안 의사다.
이다지 역사강사는 “임신 중이었던 안 의사를 지도부에서는 반대했지만 결국 결사 대원으로 거사에 동참했다”며 “이후 7개월 동안 임신한 상태로 피신했고 아이 출산 후 12일 후에 체포됐다”고 말했다. 이어 “체포 이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태어난 아이도 제대로 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해 시력을 잃는 등의 일을 겪는다”며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알려진 게 없다. 안타깝게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가 잘 안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다지 역사강사는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유 열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된 인물이다.
그는 “3.1 만세 운동 당시 일본은 ‘운동 중심에 학생이 있다’고 판단하고 임시휴교령을 내렸다”며 “이때 유 열사를 비롯한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체포된 이후 형무소 안에서 시시때때로 아리랑을 부르고 만세를 외치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 열사는 일본 간수들에게 유관순 열사는 골칫덩이었고,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며 “제가 감히 유 열사의 당시 생각을 대신해보자면 ‘지금 이런 치열한 고통을 느끼는 것조차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마리아 열사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 마리아 열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온 인물이다.
이다지 역사강사는 “3.1운동 전에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이 이뤄졌다”며 “김 열사는 ‘이 독립선언문을 한국으로 가져가면 한국에서도 독립운동의 불씨를 붙일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고 일본인으로 위장해 기모노를 입고 띠에 독립선언문을 숨겨서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만 14세에 독립운동을 펼쳤던 소은명 열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다지 역사 강사는 “소은명 열사가 독립운동 중 체포되고 모진고문 당했을 나이가 요즘 또래라면 유튜브에 빠져있을 나이”라며 “소 열사는 당시 언니였던 소은숙과 같이 배화여고 뒷산 올라가서 삼일운동 1주년 기념해 만세를 외쳤다”고 말했다.
강연 마지막에 이다지 역사강사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일제가 감시·관리하던 인물이 6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여기엔 서점 주인이나 버스 안내양부터 어린 학생과 임산부 등 정말 평범한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평범한 영웅들, 특히 여성에 대한 연구가 없다”며 “서훈 받은 독립운동가 중 여성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이런 영웅이 조명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