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검사 기소권 고집하다 1호 사건엔 교육감?…"공수처 취지 망각했나"

남궁민관 기자I 2021.05.11 16:15:28

'유보부 이첩' 내부규칙 명문화…검사 기소권 고집
검·경과 3자 협의체 재가동한다지만 협의점 요원
'유명무실' 논란 빚자 1호 사건 조희연 선택했지만
"중대 사건 놔두고 왜" 비판…공수처 '산 넘어 산'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한 지 넉 달째를 향해 가지만, 검사 사건 처리 기준을 놓고 검찰 등 타 수사 기관과 갈등을 풀어내지 못하며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유명무실하다”는 세간의 비판이 거세지자 공수처 역시 서둘러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선정하고 나섰지만, 이 역시 공수처의 출범 취지를 망각한 ‘면피성’에 그친다는 또 다른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검사 사건 기소권 고집하는 공수처…檢과 평행선

공수처는 11일 검·경과의 3자간 실무협의체 재가동을 위해 내부적으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3월 29일 실무협의체 1차 회의를 진행했지만, 검사 사건 이첩 기준 등 핵심 안건을 놓고 3자 간의 이견만 확인한 수준에 그쳤다. 이번 2차 회의에서는 보다 실무적인 논의가 펼쳐질 전망이지만, 그간 공수처와 검찰 간 이견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는 점에서 협의점을 찾아내긴 쉽지 않아보인다.

구체적으로 공수처는 검사 사건과 관련 기소권을 우선적 또는 독점적으로 갖겠다는 입장이다. 기소권은 유보한 채 수사권만 검찰에 이첩한 뒤 수사가 완료되면 다시 사건을 넘겨받아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유보부 이첩’을 주장한다. 이미 지난 4일 내부 사건·사무 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 ‘유보부 이첩’을 명문화했고, “이는 대통령령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며 검찰이 따라야 한다고 못박기까지 했다. 검찰이 이를 계속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검사 사건을 아예 경찰에게만 이첩하는 방안까지 무게감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법이 정한 권한 이상을 행사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형사소송법상 검사 사건에 대한 기소권은 공수처뿐 아니라 검찰에게도 부여된 권한인데, ‘유보부 이첩’이라는 종전에 없던 개념으로 이를 제한하고 사실상 공수처가 모든 사건에서 검·경을 수사 지휘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출범 취지와 규모가 말해주듯 공수처는 핵심적인 권력형 비리 몇 개만 찾아 엄중하게 처벌해 사회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주면 된다”며 “검사 사건 역시 대표적인 몇 건을 직접 수사하고 기소해 검찰을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면 되는데, 굳이 모든 검사 사건의 기소권을 쥐겠다는 주장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1호 사건 잡았지만…“출범 취지 망각” 비판까지

공수처가 검사 사건에 집착하며 검찰과 갈등을 잇자 급기야 현 정권의 ‘검찰 개혁’을 앞장서 지지해 온 변호사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마저 “자칫 1호 사건 수사 결과도 없이 문재인 정부가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10일 조 교육감의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1호 사건으로 선정했다고 밝히며 우려 불식에 나섰다.

다만 법조계에선 불필요한 ‘유보부 이첩’ 갈등 속 시간에 쫓겨 불가피하게 ‘면피용’ 사건을 집어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사건은 이미 감사원에서 고발 조치하면서 증거자료가 다수 확보된데다 교육감에 대해선 기소권 조차 없는 만큼 상대적으로 처리하기 편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당장 공수처에 수사의뢰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같은 중대 권력형 범죄 사건은 놔두고 이런 사건을 상징적인 1호 사건으로 삼았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공수처가 출범 취지를 얼마나 망각하고 있는지 반증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