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한 프랑스와 러시아, 미국 간 동맹이 가시화되고 있다. 시리아에 대해 각기 다른 노선을 택했던 미국과 러시아가 파리 연쇄테러를 계기로 IS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하자 힘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한 군사전략을 IS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조정한다면 미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강력한 군사대응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고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며 서로 엇갈린 길을 걸었다. 엄밀히 분류하면 IS는 반군에 속하지만 대형 테러의 배후로 부상하면서 정부군, 반군 가를 것 없이 IS에 총구를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같은 제안을 했고 미국이 협력 가능성을 열어둬 단일 공조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주 초 터키 안탈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이같은 의사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도 이날 시리아에 공습을 단행하기 전 미국에 먼저 알려줘 동맹을 형성할 수 있다는 청신호를 보냈다. 러시아가 지난 9월30일 폭격을 시작한 이후 미국에 사전고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동맹에는 올랑드 대통령이 매개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테러 직후 IS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유엔 차원의 단호한 대처를 요구했던 올랑드 대통령은 다음 주 미국과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해 IS 격퇴방안을 논의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미리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방문해 올랑드 대통령과 양국 협력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가운데 서방국의 시리아 공습은 이어졌다. 프랑스는 이날 밤 IS 수도격인 락까를 사흘째 공습했고 미국과 러시아는 이날 하루 동안 각각 12차례, 20차례의 공습을 단행했다.
물론 동맹을 형성하기까지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제재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시리아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전처럼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IS 퇴치를 위한 국제공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공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파리 테러로 달라진 것이다.
알렉세이 푸시코프 러시아 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미국과는 지난 1930년대에도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히틀러에 맞서 동맹을 형성했고 효과를 발휘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연합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IS 자금줄을 끊기 위한 노력도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은행들이 수상한 거래에 대해 제출하는 보고서를 꼼꼼하게 분석해 IS 자금원을 파악할 방침이다. 테러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정유시설 중에 생산성이 높은 곳을 가려내 폭격하거나 은행거래를 통해 IS 지원자들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IS 자금공급원인 시리아 유전에 대한 공습을 꾸준히 진행해왔고 파리 테러가 발생한 이후 원유 수송을 담당하는 트럭 300대에 포격을 가해 이중 30%를 파괴하기도 했다.
한편 파리는 빠르게 일상을 되찾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파리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se)를 올리면서 카페로, 술집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시사풍자지(誌) 샤를리 에브도 피격 사건 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벌였던 ‘나는 사를리다’(Je suis Charlie) 운동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아직 남은 테러 용의자를 붙잡지 못해 경계심은 여전하다. 18일 새벽 4시쯤에는 파리 북부 외곽 생드니에서 프랑스 경찰과 용의자 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와 살라 압데슬람 등이 생드니 아파트에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접한 프랑스 경찰이 체포작전을 펼치는 가운데 경찰 한 명이 총상을 입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