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남현 최정희 기자] 주택 거래가 늘어나면서 은행의 가계대출이 한 달 새 7조원 가량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2.0%로 낮아지면서 대출 금리가 하락한 데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주택 관련 대출규제가 완화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기준금리 하락으로 실질 예금금리가 1%대로 하락하자 만기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잔액은 10년11개월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올들어 두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10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달 말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 모기지론 포함)은 547조4000억원으로 한 달 만에 6조9000억원 늘어났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8년 1월 이후 가장 많이 증가한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394조8000억원으로 6조원 증가해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건축 규제완화에 가계대출 급증
가계대출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재건축 규제 완화 등으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에 주택 거래가 늘어난 영향이 가장 크다.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은 1만900호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2008년 4월(12만2000호)이후 6년6개월만에 최고치로 조사됐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전세값이 급등하자 이참에 집을 사자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세자금 대출보다 주택 구입대출 금리가 더 낮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대출규제 완화와 낮은 수준의 금리 등으로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8월과 10월 두 차례 걸쳐 인하하면서 대출금리를 끌어내린데다 주택대출 규제 완화의 효과가 지속되면서 대출을 받기 용이해졌단 얘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정부의 주택거래 활성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주택 거래가 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며 “주거용 건물의 경우 내년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래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과거보다 더 빠르게 가계부채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중금리 하락에 예적금잔액 10년11개월래 감소폭 최대
기준금리 인하는 단기 예금시장에선 자금 이탈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이날 함께 발표한 ‘9월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잔액(평균잔액 기준)은 876조2826억원으로 한 달 새 6조283억원(0.7%) 감소했다. 2003년 10월(-1.4%)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셈이다. 한은이 8월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인하한 이후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은 0.4% 줄었는데 그 감소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10월엔 추가 금리 인하(2.25%→2.0%)가 이뤄졌기 때문에 감소세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수시입출식예금 등을 비롯한 은행 수신은 한 달 새 7조3000억원 늘어났지만, 기준금리 인하로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아진 머니마켓펀드(MMF) 등 자산운용사 수신은 21조8000억원 급증했다. 2008년 1월(23조5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로 은행 수신 증가액의 세 배에 달한다. 이대건 한은 금융시장팀 과장은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금리가 하락하면서 자산운용사 수신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정부가 지난 달 25일 부가가치세 납부자금을 금전신탁을 통해 MMF로 운용한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