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성영 기자] 횡령과 배임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던 이화전기(024810)의 실질적 사주 김영준 이화전기공업그룹 회장이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늑장대응으로 일반 투자자의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김영준 회장은 35억원 규모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배임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는 이화전기·이트론(096040)·이아이디(093230) 등의 주식 거래를 정지했다. 한국거래소는 3개 상장사에 대해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받아야 하는지를 검토한 뒤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3월 증선위 고발 고치…검찰조사 받는 동안에도 자본조달
이화전기에 대한 이상징후는 올해 초부터 감지됐다.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3월 25일 열린 정례회의를 열고 이화전기와 김 회장 등을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와 증권신고서 중요사항 기재 누락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화전기는 이틀 뒤 주주총회를 열고 김 전 회장의 친동생인 김영선 씨를 단독대표로 내세웠다. 고발을 접수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 제2부는 이화전기와 그 계열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화전기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이화전기는 유디제이차유동화전문회사를 대상으로 33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검찰은 지난 7월 김 전 회장의 재산을 관리하는 시세조종 전문가 노모씨를 구속기소했다. 김 회장이 검찰의 수사 동향을 눈치채고 잠적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이화전기에 횡령 및 배임혐의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화전기 측은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검찰로부터 당사 및 당사의 현 임직원이 기소된 사실은 없다”며 “사실 여부가 파악되는 경우 또는 3개월 이내에 즉시 관련사항을 재공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회공시 답변 이후 273원까지 하락했던 주가는 346원까지 급반등했다. 이화전기는 9월 17일 조회공시 답변에서도 같은 내용을 공지했다. 이미 본사가 한차례 압수수색 당했고, 김 회장의 지시를 받아 일부 직원이 중요 자료를 은닉한 뒤였지만 회사 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남부지검은 지난 23일 도피 중인 김영준 회장을 체포해 구속기소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이화전기는 횡령혐의로 김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공개했고, 한국거래소는 거래를 정지했다.
◇조회공시 답변만 믿고 투자한 개인, 이화전기 주식 등 휴짓조각 위기
거래가 정지되기 직전까지 이화전기와 계열사 주식 거래는 활발했다. 특히 이화전기와 함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한 이트론은 거래 정지 직전 거래규모가 485억원에 달했고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이화전기의 경영상 문제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조회답변에 대해 한국거래소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한국거래소는 조회공시 답변은 경영진의 도덕성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용상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 부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공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거래소에서 검찰에 파견한 직원을 통해 기소 여부를 확인한 이후 투자자에게 알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조회공시 답변을 문제 삼을 수 있지만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를 정지했을 때 발생할 피해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한국거래소의 딜레마다. 거래를 정지했다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을 때 기존 주주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가 남는다. 거래를 정지할 법적 근거도 없다. 한국거래소 조회공시 규정상 일부 답변 항목에 제한돼 있으며 묻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답할 의무가 없다. 이화전기의 사례에서도 실질 주주인 김 회장 비위에 대한 공개 의무가 없었다. 한국거래소는 증빙서류로 증명할 수 없는 문구는 조회공시 답변으로 넣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가 좀더 적극적인 투자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이화전기의 성의 없는 조회공시 답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검찰에 확인을 요청한 뒤 답변을 게재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