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KBS뉴스가 파행을 맞고 있다. 19일 KBS ‘뉴스9’은 단 19분 만에 끝을 냈다. 평소 30개가 넘었던 아이템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평기자가 대부분 가입한 KBS기자협회가 길환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나섰고, 보도본부 팀장·부장들까지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사실상 취재·보도 시스템은 마비됐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뉴스가 중단되는 건 시청자의 이익에 배반 되는 일이다. 시청자에게는 ‘알권리’ 침해를, 기자에게는 직업 윤리에 어긋난 결과다. 제작거부에 들어간 기자들이 “스스로에 아픈 부분”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무거운 행동에 나선 것은 KBS가 그간 시청자의 제대로 된 ‘알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 있다. 세월호 사태가 터지면서 공영방송은 정부의 입장을 옮기기에만 급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할 정도로 이번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문제점이 많았지만 공영방송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KBS는 공영방송이 아닌 ‘국영방송’에 그친 것이다.
여러 정황상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폭로한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 의혹은 상당한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김 전 국장의 폭로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잘못된 보도가 있을 때 매번 소송전을 펼쳤던 것과 달리 청와대에서 이번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제작 거부가 장기화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기자가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는 건 최후의 수단이다. KBS기자협회가 그나마 세월호 관련 후속보도를 위한 최소인력은 유지한다는 방침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자칫 제작거부와 장기간 파업이 이어진다면 노조와 사측, 시청자 모두에게 이익이 없다는 건 MBC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노조와 끊임없는 갈등을 보였던 김재철 전 사장이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사실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 오히려 MBC의 보도 기능 자체가 망가졌다.
결국 공영방송 사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 지배구조 시스템이 근본적인 해결 과제다. 이 기회에 공영방송을 위한 제도마련을 위해 시민단체·학계·정치권이 맞대 근본적인 해답을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