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7일 베이징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국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미국에 경고했다. 미·중 관계가 악화했던 2021년 7월 주미대사로 부임해 지난해 말 외교부 수장 자리에 오른 그는 120분 동안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내내 미국을 향해 강도 높은 견제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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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드 코로나’ 원년을 맞은 올해 중국 외교 정책에 대해 “중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한다는 사명 아래 패권주의, 냉전적 사고 방식에 반대한다”면서 최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통제 등 중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미국을 의식하듯 “디커플링(탈동조화)과 일방적인 제재 또한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러 관계에 대해서도 “‘특정 국가’는 양국 관계를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면서 “양국은 ‘3불’(비동맹, 비대결, 비표적화)를 기반으로 그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으며, 제3자의 간섭이나 도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발생한 중국의 ‘정찰 풍선’과 관련해 정면으로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무인 비행선’ 사건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면서 “미국은 국제법정신과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과잉대응과 무력남용으로 외교적 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이해와 인식은 심각하게 잘못돼 있다”면서 “미국은 중국을 주요 경쟁자이자 가장 큰 지정학적 도전으로 간주해 양국이 ‘제로섬 게임’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양국이 모두에 유익한 올바른 방법을 공동으로 모색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도 그는 “자유와 개방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폐쇄적이고 배타적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면서 “대결을 유발하는 아·태 버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국제통화가 괴롭힘과 강압, 일방적인 제재를 위한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달러 패권’을 꼬집었다.
◇ 대만 문제에 기존 입장 반복…EU엔 온건 어조
전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다음달 미국을 찾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나 대만해협 안보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는 등 대만 문제는 이날도 큰 관심사였다. 친 부장은 대만 문제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사안에 답하면서 미국에 향한 견제를 이어갔다.
그는 “대만은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으로, 미국이 중국과 관계에서 넘을 수 없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면서 “미국이 정말로 대만 해협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이란 정치적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그는 “피할 수 있는 비극이 지금까지 이어져 고통스러운 교훈을 전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우크라이나 분쟁의 원인 제공자 혹은 당사자가 아니며, 무기를 공급하지도 않는다”며 중국의 대러 무기 지원 가능성을 제기하는 미국의 주장에 대한 반박했다. 또한 지난달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 제안하는 평화 회담 등을 언급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력’이 분쟁을 악용해 평화를 위한 노력이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미국을 저격했다.
미국과 달리 그는 유럽연합(EU)과 관계에선 온건한 어조를 사용했다. 그는 “중국은 항상 EU를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여기고 있고,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 EU 측과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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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강경한 대미 발언으로 중국 ‘전랑(늑대) 외교’의 상징으로 불렸던 친 부장은 자신의 별칭에 대해 “‘전랑 외교’라는 단어는 중국과 중국 외교를 모르거나 다른 속셈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말”이라면서 “중국 외교는 충분히 관대하고 호의적이나 흉악한 늑대가 온다면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이덕보덕(以德報德)’이란 문구를 소개했다. 이는 덕으로써 덕을 갚고 강직함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뜻이다. 즉, 중국은 줄곧 상호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헌법 퍼포먼스’도 눈길을 끌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예상했다”면서 준비한 헌법 책자를 들어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의 일로, 어떤 국가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 등의 내용을 인용했다.
다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나 북핵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한중 관계나 북핵 문제는 그동안 중국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슈였다. 특히 북한이 최근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이어 발사하는 등 도발을 이어가는 상황인 만큼 이례적이란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