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서부이촌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조용히 술렁이고 있었다. 지난해 좌초된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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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맞춤형 관리’ 방안과 상반된 개발 청사진이다.
서울시는 이달 초부터 지역 주민들과 협의해 서부이촌동의 도시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 일대 대림·성원·동원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 단지를 뺀 시범중산·이촌시범·미도연립과 남쪽 단독주택지의 용도지역제(도시계획에 따라 토지 용도와 사용 방법을 정한 것)를 손 봐 사업성을 높여주고 주민 주도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두 개의 선택지를 쥐게 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성원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모(65·여)씨는 “선거철에 흔히 나오는 얘기 아니겠냐”며 “지금까지도 동네가 개발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더이상 들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상인은 “오세훈 시장은 건설을 할 줄 몰라서 일을 그렇게 망쳤겠나. 사업 무산 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겠다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실패한 투자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7년여를 끌었던 초대형 개발사업이 물거품이 되면서 그간 개발이익을 믿고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가 빚만 남은 집주인들에게 불신감이 커진 것이다. 정 의원의 ‘개발 재개’ 발언 이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 주가가 상한가를 찍는 등 주식시장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인근 D부동산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이 나오자마자 집주인과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쳤을 것”이라며 “지금은 문의가 없는 걸 보면 개발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아파트 거래시장에서도 관망세가 뚜렷하다. 다만 7년 사이 반토막난 집값은 최근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 위주로 미세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서부이촌동 아파트의 경우 정상적인 매매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경매 낙찰가 위주로만 시세가 형성돼 왔다. 서부이촌동 부동산뱅크 관계자는 “대림과 성원아파트 전용면적 59㎡형 매물이 각각 5억원 중반과 후반대에 나와 있다”며 “지난해 말 개발 구역 지정이 해제된 이후 최고 5000만원 정도 오른 가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개발 기대감 때문이 아닌 전반적인 주택시장의 회복 영향이라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잠잠했던 시장이 재차 달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부이촌동 S공인 대표는 “확실하지도 않은 개발 얘기가 주민 판단을 흐리고 착각에 빠뜨릴 수 있다. 지금은 주민들도 (개발이 추진되던) 예전 수준의 집값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