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가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이 기준은 ‘IT서비스 일감을 되도록 외부 기업에 넘겨달라’로 요약된다. 일감을 개방해 중소 IT서비스 업체를 육성하겠단 취지다. 강제는 아니다. 하지만 업계는 이 자율 규범이 규제로 ‘돌변’할까 근심이다. 연성 규제로 느끼는 것이다.
공정위가 이번 간담회에서 ‘당장의 목표치도, 추후 점검도 없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시민단체 등이 실태 점검을 압박하면 공정위가 보호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걱정이 크다.
대기업이나 IT서비스 회사들이 외부 업체에 일감을 주기 어렵다고 하는 건 IT서비스의 특수성 때문이다. IT서비스는 각 기업의 핵심 공정 등 경쟁력과 직결돼 ‘남’에게 맡기기 어렵다. 급식 등 단순 서비스와는 다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은 반도체, 배터리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밀어주는 판에 계열사끼리 IT서비스를 쓰는데 절차적 정당성을 운운하니 답답한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삼성, LG, SK 같은 국내 대기업이 반도체, 배터리 관련 IT서비스 일감을 함부로 개방할 순 없지 않냐는 것이다.
물론 공정위가 이런 핵심적인 부분까지 개방하라는 애기는 아닐지 모른다. 허나 반대로 외부에 개방할 만한 일감은 이미 했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자율준수 기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업계가 아닌 공정위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아쉽다.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고는 하나, 초안부터 사실상 공정위가 작업했기 때문이다.
이미 나온 기준을 되돌리긴 힘들다. 공정위도 여러 우려를 의식해 기준안 말미에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으며, 불이행 또는 미준수를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공허한 약속’이 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