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속되는 기간만큼 세계 각 국에서는 코로나19 질환, 치료 등 각종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설'(說) 등이 난무한다.
지난해 7월(현지시간) 장 부스케 프랑스 몽펠리에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의학논문 사전발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를 통해 ‘유럽 국가별 야채 소비와 코로나19 치사율 간 연관성(Association between consumption of vegetables and COVID-19 mortality at a country level in Europ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양배추·오이 섭취량이 적은 벨기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6개 국가는 인구 1만명당 코로나19 사망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상추 섭취량이 많은 나라는 코로나19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상추 섭취량이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 반면 섭취량이 적은 독일의 사망률은 낮았다는 주장이다. 해당 논문의 내용은 국내외에서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됐다.
이데일리는 특정 음식이 코로나19의 사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의견과 프랑스 연구진의 논문 적정성을 살펴봤다.
'특정음식 섭취로 사망률 달라진다'... 인과관계 입증 안돼
연구팀에 따르면 양배추와 오이 섭취량이 적은 벨기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6개국 국민의 1일 평균 양배추 섭취량은 모두 5g을 넘지 않았다.
반면 인구 1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가 적은 루마니아, 라트비아의 경우 하루 양배추 섭취량이 약 27g 정도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오이 섭취량에 따른 코로나19 사망률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키프로스 국민은 양배추 섭취량은 적지만 오이를 30g 이상씩 먹었고, 코로나19 사망률이 라트비아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에 연구팀은 ‘각 국가별로 국민들의 양배추·오이 섭취량을 하루 1g씩만 늘려도 코로나19 사망률이 각각 13.6%, 15.7% 낮아질 것’이라며 양배추·오이 섭취량과 코로나19 사망률 간 상관관계를 주장했다.
논문을 살펴보면 양배추·오이 섭취량이 적은 벨기에, 영국,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은 것은 맞지만 특정 음식의 섭취량이 코로나19 사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긴 어렵다.
첫번째로 이 논문은 출판 전 논문(Preprint)으로, 동료평가 등의 검증을 받지 못한 예비 보고서이다. 특히나 양배추·오이 섭취량과 코로나19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을 밝혔을 뿐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연관성과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필연적으로 입증하지 않는다. 제 3변인 때문일 수도 있고, 두 변인 간 상관성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각 변인 간 인과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변인이 통제된 상황에서의 실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연구는 각 데이터를 단순 비교하였을 뿐 어떤 실험도 거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는 연구팀에서도 인식한듯 '연관성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Associations do not mean casuality)'고 논문에 적시했다.
논문 내에서도 연구진 주장과 다른 결과 나와
뿐만 아니라 논문 내에서도 ‘양배추·오이를 많이 먹으면 코로나 사망률을 낮추고, 상추를 많이 먹으면 코로나 사망률을 높인다’는 주장과 다른 연구 결과들이 보인다.
연구팀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6개국 중에서 양배추 섭취량이 많은 국가는 ‘영국→벨기에→ 스페인’ 순으로 영국이 가장 많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의 섭취량은 약 1~2g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사망률은 ‘벨기에→영국→스페인→이탈리아→스웨덴→프랑스’ 순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적시한 6개국 중 양배추 섭취량이 많은 벨기에, 영국의 사망률이 오히려 가장 높다는 것이다.
반면 양배추 섭취량이 하루 약 8g정도인 아일랜드는 호주, 독일, 덴마크보다 섭취량이 많지만 코로나19 사망률은 세 국가보다 약 두 배 높다.
또한 상추를 많이 섭취할 경우 코로나 사망률이 높다는 주장에 반대되는 결과도 보인다.
논문에서 예시로 든 국가 중 상추 섭취량이 두 번째로 높은 슬로베니아의 경우 1만명당 사망자가 100명 이하로 나타난다. 상추 섭취량(24g)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지 않다.
특히나 제시된 국가 중 상추 섭취량 1위인 스페인(27g)과 상추 섭취량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망률은 약 6배 이상 차이 난다.
연구팀도 이를 인식한듯 '일부 모델을 제외하고는 통계적 유의미성은 없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논문에서 인용한 각종 데이터에서도 오류가 발견된다.
연구팀은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포괄적인 유럽 식품 소비 데이터베이스(Comprehensive European Food Consumption Database)'에서 양배추,오이, 상추 등의 채소 섭취량을 가져왔다.
이때 이 데이터는 2020년 코로나19 사망률과 함께 비교하기에 지나치게 오래된 자료도 있다. 예를 들어 논문에서 사용된 자료 중 헝가리는 2003년 시행한 설문을 사용했다.
이탈리아도 2005년 자료가 사용되었다. 때문에 설문을 실시한지 거의 15년이 넘는 자료로 2020년 코로나19 사망률과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또한 연구팀은 각 국가의 지리적 특성이나 인구 이동량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벨기에가 인구 대비 사망률이 많은 원인으로 지리적 특성을 꼽을 수 있다.
벨기에는 네덜런드,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국가 간 이동량이 많다. 특히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의 본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유럽 국가들이 벨기에를 오고 간다.
관련하여 벨기에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담당 대변인이자 바이러스 학자인 스테번 판휘흐트는 "모든 도시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게 되겠지만, 가장 많이 연결돼 있고 국제적인 지역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면서 코로나19 1차 유행 때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뉴욕과 같은 도시에 피해가 컸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국가별 사망자 집계방식 차이 등과 같은 불확실한 요소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또한 국가별로 다른 음식 소비 패턴, 연 평균 소비량, 계절적 패턴 등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면역력 향상 도움되지만... 사망률 감소는 이치에 맞지 않아"
전문가들도 프랑스 연구진의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다.
장 부스케 연구진은 양배추·오이 등 채소 내에 함유한 'Nrf2'라는 체내 항산화 물질을 통해 코로나19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경옥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양배추·오이를 먹으면 코로나 사망률이 감소한다는 내용은 전반적으로 과학적 증명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양배추와 오이가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설포라판, 칼슘, 식이섬유 등의 영양소 함유량이 높지만 치료제가 아닌 이상 특정 식품이 코로나 사망률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
신 교수는 "채소와 연관된 Nrf2는 체내 항산화물질을 만들어내는 신호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다"며 "이것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능성 식품으로 알려진 새싹보리, 노니, 버섯류 등 항산화 기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면역력 증강 관련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몸에 맞는 건강 기능성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꾸준히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식품영양학 교수와 약학과 교수도 "음식과 관련된 주제는 검증하기 어렵다"며 "양배추·오이 섭취량과 코로나19 사망률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채소 내에 Nrf2라는 염증반응을 줄여주는 항산화 기능은 있지만 항산화 기능이 있다고해서 코로나19 사망률과의 인과성을 밝히기 어렵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 양지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