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장은 컬리의 공모가 범위에 주목하고 있다. 컬리가 얼마의 시가총액(밸류)을 인정받느냐에 따라 시장이 적자기업의 성장성에 가치를 얼마나 부여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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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리 공모가 관심…프리IPO·누적된 적자 ‘부담’
22일 한국거래소는 컬리에 대한 상장 예비심사를 실시한 결과 상장을 승인했다. 지난 3월 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5개월 만에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컬리는 창업자 김슬아 대표의 낮은 지분율(작년 말 기준 5.75%)로 거래소 예비심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의결권 공동행사, 의무보유확약서 등을 제출해 거래소 요건을 충족하면서 심사를 통과했다.
시장에서는 컬리 공모가가 어느 수준에 책정될지 주목하고 있다. 컬리보다 먼저 상장에 나섰던 쏘카는 밸류에이션을 파격적으로 낮췄지만 기관 및 일반투자자 청약에서 흥행에 참패했다. 그나마 쏘카는 컬리보다 상장 여건이 나은 편이었다. 커릴와 달리 공모 전 프리IPO를 추진하지 않아 시장 눈높이에 맞춰서 몸값을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장을 앞두고 올해 2분기 영업이익 14억원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반면 컬리는 작년 12월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프리IPO를 유치해 기업가치가 4조원대로 높아졌다. 현재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예상하는 컬리의 기업가치(1조8000억~2조원 선)는 그 ‘반토막’ 수준이다.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컬리의 장외주식 기준가는 이달 22일 기준 5만6000원, 기업가치는 2조1528억원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컬리는 지난 2014년 설립된 후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었다. 회사의 주요 서비스가 배송인 만큼 막대한 물류 투자가 필요해서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컬리의 영업손실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컬리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영업손실 액수는 지난 2020년 1162억원에서 작년 2177억원으로 2배 가까이 확대됐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컬리는 쏘카보다 시장에서 더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 분위기가 안 좋은 만큼 (기관들이) 보수적으로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손익분기점 돌파”…코로나19 엔데믹에도 ‘성장’
그러나 한켠에서는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컬리 측은 ‘공헌이익은 흑자’라며 향후 흑자 전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헌이익은 기업의 손익분기점(BEP)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으로, 매출에서 변동비를 뺀 숫자를 뜻한다.
‘변동비’는 생산량에 비례해 증가하는 비용이다. 재료비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고정비’는 생산량 증감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발생하는 비용이다. 임차료, 인건비처럼 제품 생산에 직접적 관계가 없는 비용이다.
매출에서 변동비를 뺀 ‘공헌이익’이 고정비보다 많으면 영업흑자, 적으면 영업손실이 난다. 회사가 제품을 많이 팔아서 이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게 되면 이득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공헌이익은 외부 보고용 숫자가 아니라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되는 관리회계 용어다. 즉 외부에 드러나는 수익성은 좋아보이지 않지만 손익분기점은 이미 돌파했고, 인프라 투자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한 구조라는 게 컬리 측 주장이다.
앞서 컬리는 공헌이익이 2019년부터 3년째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회사는 공헌이익이 얼마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컬리가 코로나19 엔데믹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투자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컬리의 올 1분기 총 거래액은 64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2% 증가했다. 동종업계에 비해 높은 증가율이다. SSG닷컴의 거래액은 같은 기간 23% 증가했고, G마켓글로벌(옛 이베이코리아)은 14%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IB업계가 예상한 컬리의 기업가치(1조8000억~2조원 선)가 지나치게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외 주식시장은 거래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며 “아파트 거래량이 적은데 급매물 하나가 나왔다고 해서 급매 가격을 해당 단지의 적정 시세라고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몸값이 비싼 대형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은 여전히 컬리 측에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컬리가 얼마의 시가총액(밸류)을 인정받느냐에 따라 시장이 적자 스타트업의 성장성에 가치를 얼마나 부여해줄지가 드러날 전망이다. 이를 계기로 스타트업 투자가 더 얼어붙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활성화될 수도 있다.
아울러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새벽배송 전문기업 오아시스마켓도 관심을 받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컬리와 사업모델이 비슷하지만 오프라인 협동조합 기반으로 흑자인데다 코스닥 상장이라는 점에서 컬리보다는 부담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컬리는 아직 상장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증시 상황을 고려해 상장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컬리 관계자는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면 6개월 내 상장을 해야 한다”며 “그 안에서 상장 시점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