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정면돌파 의지를 재확인했다. 어두운 잿빛 상의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의 단호한 어조와 태도에는 ‘국정화 반대’로 쏠리고 있는 여론의 무게추를 되돌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는 평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관련 발언은 전체 연설의 10분의 1가량인 4분에 불과했지만, 그 중압감은 앞의 다른 사안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화 관련 연설 때 목소리의 톤이 가장 높았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메시지는 크게 3방향으로 갈렸다. 여당에는 “흔들리지 마라”는 주문을, 야당에는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국민에게는 “자라나는 세대가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확립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대국민 호소’ 성격이 짙은 초강경 정공법을 택한 건 일종의 ‘승부수’로 보는 시선이 많다. ‘친일·독재 미화’ 프레임으로 공세에 나선 야권에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 정상화’라는 전략으로 맞불을 놓은 게 대표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진 데다, 역사학계에서 집필 거부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서 밀리면 국정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배어난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정화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는 뜻을 확고히 전달함으로써 여론전의 우위와 지지층의 결집을 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중된 국정동력을 내년 4월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역사책 문제는 대통령인 자신에게 ‘믿고 맡겨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야권은 물론 국정화에 흔들리는 일부 여당 의원들도 같이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의지 재확인으로 내년 총선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은 극한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시민단체와 연계해 첫 대규모 장외집회를 여는 등 국정화 반대에 총력투쟁에 나설 태세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국정교과서 강행을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살리기에 전념해달라는 것이 국민의 간절한 요구인데 그런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평가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연합 원내대표는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것 같다. 답답하고 절망스럽다”이라고 혹평했고,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도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야권의 여론전이 강력하게 전개되면서 국민 여론이 박 대통령의 국정화 방침에 등을 돌린다면 4대 개혁 등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동시에 조기 레임덕까지 앞당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은 “박 대통령의 개혁 과제들은 모두 국민의 지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인데, 국정화로 여야가 극단으로 돌아서고 시민사회가 양분되면 개혁 과제들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