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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산하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 11일 상고심사제도(상고허가제)와 대법원 증원을 혼합한 ‘상고심 개혁안’ 추진을 공식화했다. 개혁안은 추후 대법관회의에서 승인받을 경우 대법원의 공식안으로 확정된다.
사법행정자문회의 개혁안은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 기능을 복원시키기 위해 상고심사를 통해 사건수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사건만 선별적으로 심리하는 사법 선진국 최고법원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대법원은 과도한 사건수로 규범제시적 역할 수행이라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실제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간 150건 안팎의 사건만 심리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대법원은 2020년 기준 본안사건만 연 4만 6231건을 접수했다. 대법관 사건 대부분을 12명의 대법관이 심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연간 접수 사건만 4000건에 육박하는 구조다.
◇민주당, 대법관 13명→26명 확대안 제시
개혁안은 법원의 숙원이었던 상고허가제와 재야 법조계 요구인 대법관 증원을 결합한 절충안이다. 법조계 다수의 요구가 반영된 안이기에 사법행정자문회의 외부위원인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도 이번 개혁안에 큰 틀에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심을 끄는 건 민주당의 움직임이다. 21대 국회에서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를 위해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내 동의가 필수적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상고심 개혁 방안으로 대법관 증원안을 제시해왔다. 2018년엔 구체적으로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증원 대법관, 尹대통령이 임명권 행사
대법관 증원에 부정적이었던 법원이 이번에 재야 법조계 요구를 일부 수용해 일부 증원안을 받아들인 만큼 민주당 내부에서도 전향적 입장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변수는 늘어나는 대통령의 대법관 인사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에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 대법원장을 포함해 신임 대법관 14명 중 13명을 임명하게 된다. 상고심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윤 대통령이 늘어나는 대법관 수만큼 인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대법관 증원안을 내세웠던 민주당이 정권 교체로 대법관 인사권을 윤 대통령이 갖게 되는 만큼 민주당이 기존 입장을 수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검찰 출신으로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지낸 송기헌 의원은 이 같은 시각을 일축했다. 송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법원의 산적한 상고심 문제 해결이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떤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느냐의 문제로 가면 안 된다”며 “정치적 유불리로 결부 지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대법관 증원과 함께 추진되는 상고허가제에 대해선 “국민들의 3심 재판받을 권리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