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난 1995년 형법 개정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계속되어 온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범 인정 가능성’ 논쟁에 대한 사법부의 공식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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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A와 B는 2020년 3월 술자리에서 만난 피해자에게 졸피뎀을 탄 숙취해소 음료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모텔로 데려가 강간을 시도했다.
피고인들은 동석자가 먼저 귀가하자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공모해 인근 편의점에서 구입한 숙취해소 음료에 미리 소지하고 있던 향정신성의약품 졸피뎀을 넣은 후 피해자에게 마시게 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일시적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는 상해를 입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남편과 동석자가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피고인들의 행방을 확인하면서 강간 행위는 미수에 그쳤다.
1심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치상) 및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를 인정해 A에게 징역 6년, B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은 피고인들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A에게 징역 5년, B에게 징역 6년으로 감형했다.
피고인들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판관 12명 중 10명의 다수의견으로 “성폭력처벌법 제15조에서 정한 미수범 처벌규정은 특수강간상해죄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만 적용될 뿐, 특수강간치상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특수강간치상죄는 특수강간죄의 기수범뿐만 아니라 미수범도 범행주체로 포함하고 있다”며 “특수강간미수죄를 범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면 특수강간치상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하므로, 별도로 미수범 성립 여부는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결과적 가중범을 가중처벌하는 근거는 기본 범죄에 내재된 전형적 위험이 현실화됐다는 점에 있다”며 “기본 범죄의 실행에 착수한 사람이 실행행위를 완료하지 않았더라도, 이로 인해 중한 결과가 생겼다면 이를 결과적 가중범의 기수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책임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서경환·권영준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고 “성폭력처벌법 제15조는 제8조 제1항의 특수강간치상죄를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은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친 경우와 기수에 이른 경우의 불법은 같지 않으므로 입법자는 기본 범죄가 미수에 그친 경우를 결과적 가중범 미수로 취급함으로써 불법의 차이를 반영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형사재판에서 책임주의에 상응하는 적절하고 균형 있는 양형을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 가중범은 기본범죄에 예상하지 못한 중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가중처벌하는 범죄 유형이다. 강간치상죄는 강간(기본범죄)으로 피해자가 상해(중한 결과)를 입은 경우에 성립한다. 이번 사건은 기본범죄인 강간행위가 미수에 그쳤지만, 약물로 인한 상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다. 이런 경우 기존 판례는 특수강간치상의 기수범이 성립한다고 봤으나, 이에 대한 법리적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로 이같은 논란은 해소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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