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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강의 도중 ‘미투’ 운동을 조롱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소설가 하일지(본명 임종주·62)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강단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사과할 뜻이 없음을 재차 밝혔다.
하 교수는 이날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문학 교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조용히 살았는데 최근 느닷없는 봉변을 당했다”면서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고발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 앞에 인격살해를 당해 문학 교수로서 자존심 깊이 상처를 입었고 학생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은 제 소신이라 판단, 마지막으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학생들에게 사과하거나 수업 중 발언을 철회할 뜻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다. 하 교수는 기자회견 장소에 있던 학생들을 향해 “어쩌면 여러분이 부끄러운 것을 감추기 위해 내 사과가 필요한지도 모른다”며 “이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비지성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사안에 대해 좀더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사회학, 정치학 과목이 아닌 소설 과목이며 소설에서는 때때로 자신의 이념과 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지난 14일 문예창작과 1학년 전공필수 과목 ‘소설이란 무엇인가’ 강의 도중 문제의 발언을 한 사실이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학생회를 통해 알려져 논란에 휘말렸다. 학생회에 따르면 하 교수는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설명하면서 “처녀(점순)가 순진한 총각을 X먹으려고 하는 내용”이라며 “점순이가 남자애를 성폭행한 것으로 얘도 ‘미투’를 해야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김지은 씨에 대해서는 “만약 안희정이 아니라 중국집 배달부와의 진실공방이었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졌을 것”이라며 “작가는 글을 진실되게 써야 하며 꾸미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폭로 이유에 대한 학생 질문에는 “질투심 때문”이라고 답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하 교수는 2년 전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폭로자의 폭로와 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폭로할 때에는 취지가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것을 헤아리고 접근하는 것이 보다 상식적이라고 본다”고 부인했다.
동덕여대 측은 이날 오후 5시께 윤리위원회를 열어 하 교수의 징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오후 6시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 교수를 규탄하는 한편 학교 측에 인권센터 설립을 촉구할 계획이다.
하 교수는 프랑스 유학을 마친 뒤 1990년 장편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발간해 등단했다. 이후 ‘경마장은 네 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에서 생긴 일’ 등 일명 ‘경마장’ 시리즈를 발표해 새로운 소설적 실험을 시도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