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韓 호텔 패키지와 '쉴 권리'

성세희 기자I 2018.02.14 17:04:00
서울 주요 호텔마다 설 연휴 등을 겨냥한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사진=힐튼호텔)
[이데일리 성세희 기자] “우리 호텔은 외국계라서 패키지 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본사에 알려야 한다. 본사는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패키지를 출시하는 걸 신기하게 여긴다. 외국은 10주년 등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호텔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지 않는다.” (A 호텔 관계자)

올해는 밸런타인 데이와 우리 명절 설 연휴가 이어졌다. 또 설 연휴가 주말과 겹쳐 비교적 짧은 편이다. 서울 시내 주요 호텔은 짧은 설 연휴에 맞춰 패키지 상품을 쏟아냈다. 또 명절 전에 로맨틱한 기분을 만끽하려는 연인을 위한 밸런타인 데이 호텔 패키지도 부지기수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름휴가 시기와 연휴엔 어김없이 한정 패키지 상품이 나온다. 이외에도 계절마다 새로운 호텔 패키지 상품이 쏟아진다. ‘호캉스’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거의 매달 새로운 패키지를 즐길 수도 있다. 호텔업계는 연간 투숙객 중 외국인 비중이 높았는데 최근엔 내국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호사스럽거나 호텔을 좋아해서 그런 걸까. 그것보다는 다른 나라보다 유독 연휴와 휴가 기간이 짧아서 나타나는 현상에 가깝다고 본다. 서양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전후엔 최소 2주 이상 쉰다. 사실상 12월 중순부터는 거의 모든 회사가 다 ‘올스톱’ 상태가 된다고 보면 된다. 또 가까운 중국도 다가오는 설날(춘절)에 고향을 다녀와야 해서 거의 2주간 쉰다.

유럽은 대부분 1년 유급 휴가가 최소 6주 이상이다. 한 달간 휴가를 즐기는 유럽 직장인도 흔하다. 우리나라 직장인이 유급 휴가로 한 달간 자리를 비운다면 아마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수기에 외국에 간다면 값비싼 비행기 삯과 숙박비 등을 치르고 얼른 돌아와야 한다.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로 보면 서울 시내 호텔 패키지가 비싸지만은 않다.

고도성장으로 쉼 없이 달린 우리나라는 이제야 ‘저녁이 있는 삶’과 ‘쉴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제철마다 나오는 호텔 패키지는 긴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신 풍속도에 가깝다. 어느 순간 호텔마다 출시하는 패키지 가짓수가 줄어든다면 우리나라 휴가 풍속도도 조금 여유롭게 바뀌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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