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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에 약 끊긴 이란…암 환자들, 냉장고 팔아 약값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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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09.21 14: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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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800여종 품귀에 약값 폭등
항암제는 살릴 확률 높은 초기 환자만
보험 붕괴…약국 1.8만곳 3억달러 못 받아
美 제재 추가 강화…거래 기피 심화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란에서 만성질환자와 중증 환자들이 ‘생명줄’인 약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무너지면서다. 물량이 동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약값에 복용량을 줄이거나 진료를 미루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AFP)
(사진=AFP)
약국 7곳 돌아 겨우 구해…의약품 800여종 품귀

20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현재 이란에서는 의약품 약 800종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샤흐람 칼란타리 이란 약사협회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비용이 치솟아 약국들이 대체 약품조차 들여오지 못한다고 밝혔다.

35세 여성 시마(가명)는 신장이 망가지는 것을 막아줄 약을 찾아 수도 테헤란의 약국 7곳을 돌아다녔다. 다행히도 부유층 동네에서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값이 또 올랐다는 말에 결국 처방량보다 적은 양을 복용키로 했다. 그는 “병원들이 말기이거나 병이 많이 진행된 환자에겐 더 이상 항암제를 쓰지 않는다”며 “아주 초기 환자에게만 쓴다”고 전했다. 약이 부족해 살릴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만 항암제를 몰아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암 환자들은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팔아 약값을 대고 있는 실정이다. 한 55세 암 환자는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약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며 “병과 전쟁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들 우리더러 용감하다고 하지만 죽어가는 마당에 용감한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약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약국들에 따르면 심장약은 국산 복제약으로만 나오고, 콜레스테롤약은 값이 크게 뛰었으며, 편두통약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항우울제와 인슐린, 임신 관련 약까지 품귀가 번졌다. 외동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효과가 떨어지는 국산 항우울제로 바꿔야 했다. 정부가 유럽에서 백신을 들여오지 못해 올해 독감 예방접종도 취소됐다.

앞서 메흐디 피르살레히 이란 식품의약청장은 지난 2월 이란이 의약품의 97% 이상을 자체 생산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외화로 결제해야 하는 수입 전문의약품이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압박’ 정책이 이란 은행 감시를 강화하고, 주요 외화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막으면서 품귀가 심해졌다.

페이반드 바스타니 호주 플린더스대 선임강사는 “국내 생산 비중이 높다고 완전한 자급자족은 아니다”라며 “국내 생산도 수입 원료·장비·기술에 기대고, 일부 고가 전문의약품은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험사 약값 3억달러 미지급…제약사 40여곳 공습으로 피해

보험 체계도 무너졌다. 이란 약사협회는 지난달 전국 1만8000곳 넘는 민간 약국이 보험사로부터 800조리알(약 3억달러·4167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백만명이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처방전을 내밀어도 약을 받지 못하거나 전액을 직접 내야 하는 실정이다. 칼란타리 회장은 “약국들이 자기 돈을 들이고 1년씩 기다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전쟁 피해도 겹쳤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 말 항암제·마취제 원료를 만들던 제약사 토피그다루 공장을 공격했다. 이 회사가 화학무기를 연구하는 기관에 펜타닐을 공급했다는 이유였으나, 토피그다루 측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100년 넘은 파스퇴르연구소도 피해를 입었다. 의학저널 랜싯은 유전체 감시, 광견병, 에이즈, 바이러스성 간염 등을 다루던 핵심 실험실들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모하마드 하셰미 이란 식품의약청 대변인은 지난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제약사와 장비·유통업체 40여곳이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제재 회피망 단속에 ‘과잉 준수’까지…은행들 거래 기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이란의 제재 회피망 단속을 예고했다. 미국은 식품·의약품·의료기기 거래는 허용하지만, 2019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한 이후 의약품 거래 시 구매자 정보와 재판매 금지 서약서를 내도록 요구해왔다.

미 정부는 여기에 더해 지난주 다른 일부 거래 허가 규정도 강화했다. 특정 허가에 대해선 ‘원칙적 거부’ 방침을 채택하고 사안별로 심사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번거로운 절차 탓에 해외 기업들이 이란과의 거래를 꺼리게 됐다고 지적한다.

바스타니 강사는 제재가 국제 결제를 막고 해외 은행·공급업체의 거래 의지를 꺾는다고 짚었다. 대형 제약사들 자체는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이끈 바레카트제약그룹처럼 최고지도자 직속 제재 기관과 얽힌 곳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제재 전문 로펌 설립자인 에리히 페라리는 은행이 거래를 지나치게 위험하게 보는 ‘과잉 준수’를 문제로 꼽았다. 그는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 상대를 찾아도, 위험을 감수하고 거래를 처리할 은행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란은 카타르에 묶인 자금 일부를 인도적 목적으로 풀기 위해 미국과 협상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 밀려 논의가 멈췄다. 페라리는 “날마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렇게 가혹한 제재 속에서 이란인들이 이만큼 버틴 게 놀랍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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