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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검찰 공화국’은 안되고 ‘경찰 공화국’은 괜찮다?

이배운 기자I 2022.04.18 15:16:39

형사법 개정안 뜯어보니…검찰 빈자리 경찰이 ‘독차지’
정보 수집권·수사권 독차지 하는데…견제 장치는 ‘無’
법조계 “中공안보다 강력한 통제불능 수퍼파워 탄생”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 강행에 나선 가운데,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할 방안은 여전히 공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른바 ‘검찰 공화국’을 막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법안이 오히려 경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는 ‘경찰 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비판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전경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지난 15일 발의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기존에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으로 정해져 있던 수사 관련 규정들에서 검사는 지우고 사법경찰관만 남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는 내용의 기존 형사소송법 제196조가 삭제된다. 아울러 검찰이 가지고있던 ‘피의자 출석요구’, ‘제3자 출석요구’, ‘피의자신문’, ‘참고인과의 대질’ 등 권한도 모두 사법경찰관이 갖게 된다.

검사 또는 경찰에게 고소·고발을 할 수 있다고 정한 형사소송법 237조도 ‘경찰에게만’으로 개정된다. 국민으로서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우려해 검찰에게 남겨뒀던 권한도 상당 부분 삭제된다. 현행법은 검사가 경찰의 수사에서 법령 위반, 인권침해, 수사권 남용 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면 사건기록 등본 송부와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경찰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시정해 그 결과를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선 시정조치 요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삭제됐다.

사법경찰관이 관할을 넘어 수사하는 경우에 대한 통제력도 약해졌다. 현행 형사소송법 210조는 경찰의 관할구역 외 수사 조항에서 경찰이 관할지검 검사장 또는 지청장에게 사유를 ‘보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개정안은 ‘통지해야 한다’로 바뀐 탓이다. 경찰의 피의자 구속기간이 현행 최대 10일에서 20일로 연장된 부분도 논란이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체포·구속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은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했을 경우 최대한 빠르게 사법관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며 “일제시대에도 사법경찰관이 14일 구류가 가능했는데 왜 그때의 형사사법제도로 회귀하려 하느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로비 전경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현행 형사소송법은 변사자 검시와 관련해 검사가 사법경찰관에게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요구할 수 있다’고 바꿨다. 검사의 변사자 검시 요구에 경찰이 응하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경찰의 가혹행위를 밝히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개정안은 검사가 경찰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했는데,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이 영장을 신청한 경우에만 검사가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규정”이라며 “강제수사의 주도권이 경찰에 있는데 수사 초기 단계에서 어떻게 경찰을 수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진급에 목을 매게 하는 경찰 인사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11단계로 나뉜 경찰의 계급 구조는 승진에 민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이는 결국 경찰 조직이 검찰에 비해 더욱 정치권 눈치를 살피도록 만든다는 지적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검사는 퇴직하더라도 변호사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경찰은 제때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고 밖으로 나가도 달리 몸담을 곳이 없다”며 “구조적으로 인사권을 가진 정치권력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일례로 검경 수사권조정 이후 경찰이 수사를 주도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투기 사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서도 경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탓에 수사 결과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이 과거 정권 비리 수사를 틀어막기 위해 검수완박을 강행한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나아가 오는 2024년에는 국가정보원이 가진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될 예정이다. 경찰이 국내 수사기관 중 유일하게 정보수집 기능까지 갖게 되면서 통제 불능의 거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종민 변호사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 경찰은 중국 공안보다 더욱 강력한 기관이 된다”며 “경찰청 정보국을 중심으로 전국 경찰의 정보과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마음먹으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수퍼파워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도 국정원도 무력화된 상황에서 경찰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기관은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 검수완박의 실체”라며 “사실상 검수완박이 아니라 경찰의 검사화”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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