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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느껴야 소비도 늘고 투자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은 경제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최근 가계의 소비심리가 갈수록 악화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달 심리지수는 1년5개월 만에 최저치 급락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기 전, 최순실 정국의 혼란이 지속된 지난해 3월 수준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일자리 쇼크 등 대내외 악재가 쏟아진 탓이다. 특히 ‘소비의 중추’ 중산층의 심리마저 어두워지고 있다.
◇1년5개월만에 소비심리 최저 급락
한국은행이 28일 내놓은 소비자동향조사를 보면, 이번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전월 대비 1.8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3월(96.3) 이후 최저 수준이다. CCSI는 한은 소비자동향지수(CSI) 6개를 이용해 산출한 심리지표다. 장기 평균치(2003년 1월~2017년 12월)를 기준값 100으로 해 이보다 크면 가계의 심리가 낙관적임을 의미한다.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CCSI는 ‘리얼타임’으로 거시경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표다. 한은 인사들은 “심리지표는 분기 정도 시차를 두고 실물지표를 선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번달 지수가 우려되는 건 1년5개월 만에 ‘비관론’으로 기울었다는 점 때문이다. 고용 쇼크 지표가 나온 지난달(101.0) 하락 조짐을 보였다가, 이번달 결국 장기평균을 하회한 것이다. 당분간 경기 둔화 우려가 계속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은 한 관계자는 “고용 지표 부진, 생활물가 상승, 미·중 무역 갈등 등의 영향”이라며 “일부 신흥국의 금융 불안에 따른 주가 하락도 소비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분석했다.
현재경기판단 CSI가 70까지 떨어진 게 그 방증이다. 지난해 4월(69) 이후 최저다. 6개월 후 전망을 나타내는 향후경기전망 CSI(82)도 기준값을 한참 밑돌았다. 이는 지난해 3월(77) 이후 1년5개월 만에 가장 낮다. 취업기회전망 CSI는 85로 전월 대비 2포인트 떨어졌다. 이 역시 1년5개월 만의 최저다. ‘일자리 정부’ 슬로건이 무색한 수치다. 현재생활형편 CSI(91→89), 가계수입전망 CSI(99→98) 등도 한 달 사이 일제히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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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중추’ 중산층 심리 더 악화돼
중산층의 심리가 상대적으로 어두워진 점도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경기판단 CSI의 경우 월소득 400만~500만원(80→75)와 500만원 이상(80→74) 같은 중산층 가구가 5포인트 이상 내렸다. 300만~400만원 가구는 78에서 67로 9포인트 급락했다. 100만원 미만(70→67) 저소득 가구보다 오히려 큰 폭 내려앉은 것이다.
경기 전망도 마찬가지다. 500만원 이상 가구의 향후경기전망 CSI는 이번달 83(-5포인트)까지 고꾸라졌다. 지난해 3월(80) 이후 최저치다. 월소득 300만~400만원 미만(89→81), 400만~500만원 미만(91→90)도 내렸다. 100만원 미만 가구의 지수가 지난달과 같은 84인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취업기회전망 CSI 역시 100만원 미만(83→86)은 올랐는데, 400만~500만원(94→92)과 500만원 이상(89→87)은 반대로 내렸다. 국내외 소비를 주도하는 중산층이 흔들리면,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도 비틀거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집값 전망은 ‘나홀로’ 급등했다. 이번달 주택가격전망 CSI는 109(+1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한은이 2013년 1월 지수를 편제한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각종 실물·시장·심리지표가 일제히 하락하는 와중에 1년 후 집값 전망만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한은 한 관계자는 “최근 서울 집값이 급등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집값 전망 지수는 소득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10포인트 안팎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