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 마비” “정부 무기력” “국민 피해” 등의 거센 발언을 총동원해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이 규정한 최후의 보루인 법률안 ‘거부권’을 실제 행사하기에 앞서 ‘여론전’에서의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특히 “가뜩이나 국회에 상정된 각종 민생법안조차 정치적 사유로 통과되지 않아 경제살리기에 발목이 잡혀 있고 국가와 미래세대를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조차 전혀 관련도 없는 각종 사안과 연계시켜 모든 것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이라고 언급, ‘국회법 개정안’이 여야의 정략적 판단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또 북한의 공포정치 등을 언급, “이럴 때일수록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국회법 개정안=정치적 불안정’이란 프레임으로 몰아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거부하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면돌파’를 택한 건 여론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청와대는 행정부의 힘을 빌려 강력한 홍보전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2000년 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커 통과되지 않은 사례를 언급하며 국회 차원에서 위헌 논란을 먼저 정리하라고 여야를 압박한 것도 ‘여론전’의 하나로 보인다. 현재 ‘국회는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놓고 여야는 각각 ‘강제성이 없다’와 ‘강세성을 띤 의무조항’이라며 맞서고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개정 국회법이 정부 이송 전 여야의 재논의를 통해 ‘강제성이 없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굳이 껄끄러운 거부권 행사 등의 무력행사에 나설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가 ‘강제성이 있다’는 야당의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박 대통령은 ‘삼권분립 침해’를 명분으로 여론을 내세우며 다소 편안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