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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과잉 생산된 쌀의 시장 격리를 의무화 할 경우 연간 1조원 넘는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지난 18일 열린 양곡관리법 당정협의회에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국책기관에서도 공급 과잉 심화와 1조원 넘는 재정 소요 문제를 지적했다”며 “격리 의무화는 구조적 공급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래 농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시장격리 의무화와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병행해 장기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봤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그간 의원들에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며 “구조적 과잉은 논 타작물 재배에 따른 생산 조정을 통해서, 일시적 과잉은 시장격리를 통해서 해결하는 게 맞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은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에 연간 1500억원이 소요되며 정부가 수급조절을 제대로 시행할 경우 시장격리 예산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태국도 비슷한 정책을 폈다가 재정이 파탄나 나라 경제가 거덜난 적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민주당은 “혹세무민의 전형”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병행하는 제도로 태국과 다르다”며 “태국은 쌀만 비싼값에 매입해 재정 부담을 증가시켰지만, 우리 (민주당안)의 경우 쌀 과잉생산을 방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45만톤 격리…시장격리 의무화 필요한가
지난달 25일 정부는 제4차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쌀값 안정 및 수급 안정을 위해 금년 수확기에 역대 최대 물량인 총 45만톤(t) 규모의 쌀 시장 격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18일 정 장관 역시 “정부·여당은 수확기 역대 최대 물량 45만톤을 시장격리 하기로 결정했고, 공공비축미를 포함한 총 90만톤에 대한 정부 매입 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며 “현행 법 체계에서도 정부의 정책적 의지로 쌀값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쌀 45만톤 매입 발표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면서도 시장격리 의무화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수확기에도 쌀값 폭락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쌀값 폭락을 방치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번에 의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초과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이상 하락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시장격리를 하도록 했다.
◇쌀값 폭락, 文 vs 재정당국 누구 책임인가?
지난 12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발언대-쌀값정상화편’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의장은 “농민들은 아직 민주당을 신뢰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역대급 쌀값 폭락 원인을 제공한 게 문재인 정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를 두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역시 “현 쌀값 폭락은 문재인 정부 농업정책의 실패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역시 “지난해 수확기 쌀값 폭락 사태를 맞이하여 당 차원의 시장격리 요구에도 불구하고 재정당국을 설득하지 못해 시기를 놓침에 따라 폭락 사태를 낳은 데 대해 정책실패를 인정한다”면서도 “이 같은 재정당국의 재량권 남용에 따른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농해수위 위원인 신정훈 의원은 농해수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농림부 차관을 향해 “37만톤 격리 따른 재정 손실은 8000억에서 8500억 정도로 추산한다”며 “이 정도 재정 수요가 추산되는 결정을 (농림부가) 국회의 동의도 없이 시행하고 나중에 그 이후 재정은 누가 감당하는가”라고 질책한 바 있다.
한편 이날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최장 60일간 법사위에서 의결되지 않으면 농해수위 위원 5분의 3 찬성으로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논의까지는 최장 30일이 소요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의결된 직후 “농촌과 농민의 미래를 망칠 것이 자명하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민주당에 법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측에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