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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땅콩 회항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으며 특권에 저항하는 개인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며 개인의 시련 속에서 비로소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에 눈을 뜨게 됐다”라고 했다.
이어 “성실한 시민으로 살아왔지만 막상 거대한 힘을 가진 세력과 다툼이 생기자 그 어떤 공동체의 정의도 자동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다”라며 “죽을 만큼 힘든 고비를 넘고 넘으며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싸움을 수없이 해나가면서 그나마 생존이라도 도모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계 입문 당시 정의당을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선 “스스로 눈뜬 신념을 더 넓게 우리 공동체를 위해 실천하는 삶을 다짐하는 시간에 바보 노무현과 노동운동의 선구자 전태일을 다시 만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당을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을 위해 2020년 비례대표로 나서 달라는 요청에 처음에는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존경하는 노회찬 의원님을 떠올리며 미완의 진보 정치를 펼쳐가는 삶이 숙명이라 생각해 종국에 받아 드렸다”라며 “이를 두고 자기 몫의 이권을 채가는 훼방꾼으로 여기는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마주하며 견뎌야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정의당을 더 많은 시민의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될 수 있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라며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사태의 책임자인 실소유주 민주당 이상직 의원에 맞서고, 잊혀진 존재가 된 정의당 비상구라는 노동 상담 창구를 부활시켰고,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부당함에 함께 하기 위해 두 달여간 1인 시위에 나섰으며, 지금도 투쟁 중인 파리바게트 노동자들을 위한 지지 투쟁에 제일 먼저 나섰다”라고 일일이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제가 이런 목소리를 낼 때마다 당은 미적거렸다”라며 “그런 현장에 더 빨리 더 함께 하자고 주장했지만, 당의 주된 흐름은 다른 일에 집중했다”고 했다. 이어 “당을 위한 일을 하면 할수록 정의당은 내가 생각한 정당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라고 폭로했다.
특히 “지방선거 참패 이후 비례대표 국회의원단의 책임을 묻는 투표가 당원들에 의해 불같이 일어나자, 그제야 노동자들의 곁에 서겠다며 현장에 앉아 있고, 그 모습을 SNS에 올리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 노동자 서민을 위한 당이 다시 되어달라는 당원들의 요구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하려는 음모처럼 여기는 모습에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 시민의 상식에 부응하는 당이 되자는 수많은 당원의 목소리를 반여성주의와 민주당2중대라 낙인찍는 당내 정치가들의 모습이 과연 기득권 정당들의 패권적 선전 선동과 별반 다름없음을 본다”라고 했다.
이에 박 전 부대표는 “이제 정의당이라는 울타리는 나가지만 꿋꿋이 제 길을 개척해가겠다”며 “저는 이제 다수 시민이 오고가는 여러 길목에 서 있는 표지판으로 약자의 고난한 삶 속에 진실로 도움이 되는 이정표가 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박 전 부대표는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진 뒤 2017년 정의당에 입당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8번을 받았으나 당선권에 들지는 못했다. 지난해에는 정의당 부대표로 선출돼 올해 6월까지 활동했다.
땅콩 회항 사건은 2014년 12월 5월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이륙 준비를 하던 도중 기내에서 땅콩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은 항로변경 혐의와 업무방해죄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확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