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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로 가린 CCTV…직장 감시의 합법적 범위는?

성주원 기자I 2025.03.26 14:12:30

헌법재판연구원, 전자 노동감시 법적 지침 제시
"감시설비 설치, 원칙적으로 정보주체 동의 필요"
사용자 경영권-근로자 사생활권 충돌 해법 제안
"실질적 동의와 최소한의 감시가 핵심 균형점"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회사가 설치한 CCTV 카메라에 비닐봉지를 씌워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트럭·버스 제조회사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사업장 내 CCTV를 가리자 회사 측이 이들을 형사고소한 사건이었다. 노조 측은 회사가 근로자들의 동의나 노사협의 없이 CCTV를 설치했다고 주장했고 회사는 시설물 보안과 화재 감시가 목적이라고 맞섰다.

사진=게티이미지
대법원은 2023년 6월 이 사건에 대해 “개인정보 수집 시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는 것이 원칙이고 예외는 엄격히 해석돼야 한다”며 사업장 내 감시카메라 설치의 정당성 요건을 명확히 했다. 근로자가 작업하는 공간을 촬영하는 카메라에 대해서는 정당행위 가능성을 열어두며 전자 노동감시에 관한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전자 노동감시, 기본권 충돌 문제 발생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업장 내 CCTV, 위치추적, 생체인식 등 첨단 감시기술이 확산되면서 ‘사용자의 경영권’과 ‘근로자의 사생활 보호’가 충돌하고 있다. 헌법재판연구원은 최근 ‘전자 노동감시에서 발생하는 기본권 충돌의 해결’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전자 노동감시에 대한 법적 기준과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감시의 사전 고지, 진정한 동의 확보,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감시 등 5가지 핵심 요소가 균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전자 노동감시를 단순한 사생활 침해가 아닌 헌법상 기본권 충돌 문제로 접근했다. 사용자의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이 근로자의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개인정보자기결정권)와 충돌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행 근로자참여법 제20조에서는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를 노사협의회 협의사항으로 규정하는 정도에 그쳐 빠르게 변화하는 감시 기술에 대응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감시 유형…대법 “정보주체 동의 원칙”

보고서는 현대 전자 노동감시를 △작업 감시 △카메라 및 위치 감시 △신체 감시 △사회적 평판 및 관계 감시로 분류했다. 이는 업무수행 감시, 보안 목적 감시, 법적 요구사항 준수, 근로자 이익을 위한 감시로 나뉜다.

국내 판례에서는 대법원이 2023년 CCTV 설치 사건에서 개인정보 수집 정당화 요소로 △정당한 이익의 내용과 성격 △정보주체의 규모 △수집 정보의 종류와 범위 △대체수단 존재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미국 법원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 기대’ 기준을 활용해 회사 기기에서는 프라이버시 기대 수준이 낮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연방대법원은 ‘온타리오시 대 콰온(City of Ontario v. Quon)’ 사건에서 감시가 ‘가장 침해최소적(least intrusive)’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유럽인권재판소는 ‘버르불레스쿠 대 루마니아(Barbulescu v. Romania)’ 판결에서 근로자 보호에 무게를 둔 기준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사전 통지 △감시 범위와 침해 정도 △정당한 목적 △대체 수단 존재 여부 △감시 결과의 영향 △보호장치 존재 여부가 포함된다.

◇사전 고지·근로자 동의 필요…감시는 최소한으로

보고서는 전자 노동감시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고려요소로 5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감시와 관련해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사전 고지가 이뤄져야 하며, 노사 간 권력 불균형을 고려한 근로자 동의의 진정성이 확보돼야 한다. 또한 감시는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관련이 있어야 하며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다뤘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주기적 삭제, 접근 제한 등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는 보호장치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나치게 경직된 규제보다 근로자의 실질적 동의권과 통제수단을 강화하는 방향의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근로계약에 전자 노동감시 사항 명시 △근로자의 정보 접근권 부여 △오남용 시 강력한 제재 △업무와 무관한 정보 수집 금지 등을 제안했다.

연구책임자인 진호성 책임연구관은 “이번 연구가 전자 노동감시의 현황 및 문제점, 그리고 외국에서의 재판실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한편 작게나마 전자 노동감시에 관한 관심과 반향을 일으키고 실무적인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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