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기존 대북 원칙 고수하면서 당국간 대화 촉구
정상회담에도 열린 입장…설 전후 이산가족 상봉 기대
기존 입장 답습·비핵화 언급은 北 반발 우려
대북 전단 입장 변화·체제 비판 없는 점은 긍정적 사인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대북 관련 메시지는 기존 입장에서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강한 유인책이 없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함께 다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외교 부문,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원칙론을 강조했던 것을 고려하면 기존 입장을 지키면서도 필요한 사인은 보냈다는 것이다.
◇ “필요하다면 정상회담 못 할 이유 없다…이산가족 상봉 시급”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남북대화에 대한 기존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 정상회담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형태의 대화든 상관없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시급성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문제는 생존해 계신 분들의 연세를 고려할 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설을 전후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이 열린 마음으로 응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행간에는 변화를 감지할 있는 부분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에 대한 부분이 지난해보다 분량도 늘었고 다른 질문에 비해 통일과 대북관계에 대해 훨씬 자신감 있고 정리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 북측으로선 긍정·부정 요인 혼재
구체적인 현안에서도 기존 입장과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먼저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해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줄곧 전단문제에 있어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편에 서 있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이전에 비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서 좀 이렇게 뭔가 조정을 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주민들 간의 갈등 및 지역주민들의 신변의 안전 등 두 가지 가치를 고려해 조율해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24 조치 해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보상이라는 그런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차원”이었다며 5·24 조치 해제 문제도 당국 간 대화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남북 간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북한에서 강하게 반발을 하고 나설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어떤 진정성 있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며 비핵화를 예로 들었다. 박 대통령은 “비핵화 같은 것, 이것이 전혀 해결이 안 되는데 (전제 조건은 아니지만)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정외과 교수는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없다고 하면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 ‘진정성’ 보여줄까…향후 北 반응 예의주시
이제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열린 마음과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므로 올해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결국 북한이 향후 당국 간 대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오는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북한이 이번 신년기자회견에 대해 즉각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측이 공식적인 성명이나 담화를 통해 반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양 교수는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북측 주장에 대한 답변이 없었다는 점을 비판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남북대화 재개는 신년기자회견에 대한 지엽적인 반응보다는 북한 측이 우리 정부가 제안한 대화의 장에 나올 의사를 확실히 밝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