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쟁이 안고 식량도 기름도 없이...韓일가족 목숨 건 가자 탈출기

김혜선 기자I 2023.11.03 16:27:57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고립됐던 가자 지구 주민 중 한국인 일가족 5명이 급박했던 탈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26일만인 2일(현지시간)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가자지구내 유일 한국인 부부의 자녀가 이집트 카이로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3일 연합뉴스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생한 지 26일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한국인 일가족을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피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보도했다.

가자에서 탈출한 한국인 일가족은 최모씨(44)와 한국으로 귀화한 팔레스타인계 남편(43), 이들 부부의 딸(18), 아들(15) 및 7개월 된 늦둥이 막내딸이다. 이들 가족은 7년 전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가자 지구 핵심부인 가자시티 해변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하마스가 공격을 단행한 지난달 7일(현지시간) 최씨의 시댁이 있는 달릴 하와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측이 “달릴 하와를 공격하겠다”며 대피 명령을 내려 다시 남부 도시 칸 유니스로 피란을 갔다.

최씨는 이스라엘의 공습 수위를 두고 “무차별적”이라며 “병원도, 교회도, 학교까지 공격 안 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가자 지구는 공습이 자주 발생해도 주택가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그는 “항상 전쟁이 나면 (우선 공격 대상이 되는)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인 시댁 쪽으로 피신을 했고 이번에도 시댁에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26일만인 2일(현지시간)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가자지구내 유일 한국인 가족이 이집트 카이로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다시 칸 유니스까지 대피하며 이들 가족은 식량과 물, 통신, 전기 등이 끊기는 극한 상황을 겪었다. 최씨는 “전기는 당연히 없고 해서 활동도 낮에 할 수 있는 것은 낮에 다 해뒀다. 태양광 등을 이용하는 유료 배터리 충전 서비스를 이용해 휴대용 배터리를 충전한 뒤 밤에 조금씩 켜서 아껴 썼다. 가스도 다 떨어졌다”며 “장작을 구해 불을 피워 식사 준비를 했고, 최대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사뒀던 흰콩, 토마토, 옥수수 캔 등으로 버텼다. 통신이 끊겼을 때는 위험한 지역을 확인할 수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통제하지 않는 ‘라파 통행로’를 통해 가자를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연료를 얻는데도 고생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기름도 없고 해서 최대한 사용 안 하려고 노력했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아예 없어서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주유소에서는 구급차나 긴급차량 이외에는 기름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지인에게 사정을 해서 조금씩 얻어서 썼다. 마지막 국경 올 때 남은 연료를 다 사용했고,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연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가 살던 가자 시티 집은 이스라엘 폭격에 무너졌다고 한다. 그는 “오갈 데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상상하는 것,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직장 등 모든 것을 잃은 가족은 “일단 한국에 갈 계획을 하고 있다. 거기에서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려하는데, 돈도 없으니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갓 태어난 막내딸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막내딸은 희망이었다. 울고 웃고 칭얼대는 딸을 보면서 희망을 찾은 것 같다. 웃을 일이 없었는데 딸이 웃으면 같이 한번 웃고 그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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