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올해 편성하는 1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중 1조원 가량을 수출입은행에 수혈할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 지원에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한 ‘자본확충펀드’ 이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현금 출자를 하라는 국회 주문 때문이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야·정 제3차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 참석 후 “3당은 재정 선도 원칙에 따라 추가경정예산에 국책은행 현금 출자를 충분히 반영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며 “정부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새누리당 김광림,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등 여야 3당 정책위의장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참석했다.
구체적으로 3당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부실화 우려가 커진 한국수출입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위한 현금 출자를 주문했다. 김 의장은 “추경안에 수은에 대한 현금 출자 1조원을 집어넣도록 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수출입은행의 BIS비율(국제결제은행인 BIS가 정한 은행 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비율)은 9.9%로, 또 다른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14.6%)보다 건전성 지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에 대한 1조원 현금 출자는 애초 정부 계획에는 없던 것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보면 오는 9월 말까지 수은에 공기업 주식 1조원을 현물 출자하고, 산은·수은 현금 출자 금액은 내년 본예산에 반영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다. 또 비상 시에 대비해 한국은행과 기업은행이 최대 11조원 한도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국책은행이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지원하는 ‘캐피탈 콜’ 방식으로 운영키로 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도 지난 6일 출입기자단 정례브리핑에서 “(국책은행에 대한) 현금 출자 가능성도 열려 있지만, 본 예산 편성 과정에서 논의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야 3당이 이번 추경 예산에 수은 현금 출자액을 반영토록 한 것은 국회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중앙은행 발권력을 활용하는 자본확충펀드 이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김성식 의장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 나쁜 사례”라며 “한은 팔을 비틀 게 아니라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야 3당이) 자본확충펀드 운용을 최소화하는 데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회의에서 전체 추경 예산의 대략적인 밑그림도 나왔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추경 전체 규모는 11조원을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 될 것”이라며 “지방재정교부금과 교육재정교부금에 4조원, 기존에 발행한 국채 상환에 1조~2조원, 수출입은행 출자에 1조원 내외 등 3가지 항목에 6조원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4조원 정도가 정부가 앞서 공언한 일자리 확충, 조선업 밀집지역 경제 활성화 재원 등으로 투입된다는 이야기다.
국회가 이 같은 방침을 내놓음에 따라 정부도 추경 편성안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에 넣으려던 국책은행 현금 출자액을 올해 추경으로 앞당긴다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방어벽이 더 튼튼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확충펀드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펀드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방어벽으로, 은행의 지원 요청(캐피탈 콜)이 없다면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