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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3일 ‘KDB 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머리를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혁신안을 살펴보면 이 회장의 각오와 달리 급조한 방안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자문단’을 회장 직속으로 신설하고, 산은 전체 조직 및 업무 추진 등에 대한 방향 및 세부방안도 외부인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 등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부실 관리 논란에 여론이 악화되자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외부의 목소리를 듣기로 한 것이지만 외부자문단이 부실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나 책임 또한 불명확한데다 문제의 핵심을 빗겨갔단 지적이다. 문제의 본질은 산은이 대우조선을 16년간 자회사로 보유하면서 대주주 겸 주채권은행으로서 관리해왔음에도 수 조원의 부실을 제때 적발하지 못했단 점에 있는데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권한도 책임도 없는 ‘구조조정’ 외부자문단
산은 혁신안에 따르면 정책금융과 조직 역량 강화 두 부문으로 나눠 △구조조정 역량 제고 △미래 정책금융 △출자회사 관리 △여신심사 및 자산 포트폴리오 개선 △성과주의 강화△대외소통 강화 등 6대 혁신 과제가 담겨 있다. 혁신안의 핵심은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가장 논란이 됐던 구조조정 역량에 대해선 회장 직속으로 기업 구조조정 지원 특별자문단을 신설해 구조조정 업무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키로 했다. 특별자문단은 산업계, 학계, 구조조정, 회계 및 법률 전문가 40~50명으로 구성된다. 산은 조사부를 싱크탱크(Think Tank)로 육성해 산업재편 및 미래성장 동력 지원을 위한 분석 기능을 강화하고, 경기변동에 따른 취약업종을 조기에 선정해 산업별 경쟁력을 우선 점검한 후 취약 및 개선사항에 대해 자문할 계획이다. 개별기업에 대해선 경제적 중요성이 클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조언을 받겠단 방침이다. 또 구조조정 분야에 회계 및 법률 전문 외부 인력을 신규로 충원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겸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자문단이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임도 없는데 이는 회장이 (자문을 듣고) 판단하기 나름”이라며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대우조선 자금 집행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데 외부전문가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구조조정 뿐 아니라 산은 조직 및 업무 전반에 대한 부분도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예정이다. KDB혁신위원회를 신설해 구조조정, 미래 정책 금융 비전 등 산은의 역할과 인사, 조직, 업무프로세스 전반을 진단키로 했다. 외부인을 위원장, 위원으로 선임하고 외부 전문기관이 참여토록 해 산은에 대한 외부 의견을 수렴하겠단 취지다. 이 혁신위원회가 컨트롤타워가 돼 6대 혁신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세부 방안이 9월경 마련된다.
◇ 대우조선 등 부실기업 관리 방안도 ‘부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지적된 대우조선 등 출자 자회사 관리방안에 대해선 뾰족한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았다.
즉, 감사원에선 산은이 대우조선에 CFO(최고재무책임자)를 파견하고도 대규모 손실 및 분식회계 등을 적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는데 산은은 상법상 감사권이 없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대응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출자회사에 인력 등을 파견하는 방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산은은 공직자윤리법에 준해 임직원의 비금융출자회사에 대한 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했으나 출자회사관리위원회 심사를 통하면 가능하도록 했다. 최대한 산은 출신을 배제키로 한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산은 출신도 가능할 뿐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출자회사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산은 출신이 갈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일장일단이 있다”며 “외부인이 오면 업무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산은 출신이 오면 현실 안주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실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 위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