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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군수인 이경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근대학문을 익혔으며 1894년 과거시험인 성균관 진사에 합격한 후 한성부 주사에 임명됏다. 1899년에는 관립 영어학교 교관으로 후학을 지도했다.
1901년 3월 민영돈이 주영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될 때 선생도 주영공사관 참서관으로 함께 영국에 파견됐다. 선생은 영국에서 교류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면서 한국의 사정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선생은 러시아와 일본 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했다. 한반도의 평화가 유럽의 세력균형과 연관된다는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견해를 제시하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영국 외무부를 설득했다.
또 당시 국제상황으로 보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전후에 한국의 독립이 유지되기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1905년 3월 영국 외무대신에게 거중조정(good office)을 요청하는 등 외교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선생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서 국권이 상실돼 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비통한 심정에 1905년 5월 12일 자결 순국했다.
1962년 정부는 구국외교를 펼치다 순국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