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대법 “유서대필 조작 피해자 강기훈, 국가배상 시효 남아…파기환송”

김윤정 기자I 2022.11.30 16:14:26

대법 "위헌으로 효력 없어진 소멸시효 적용…재판단하라"
수사검사·국과수 감정인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아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대법원이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 씨의 국가배상 청구 사건 원심에서 원고 패소한 부분 일부를 파기했다. 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은 강씨와 강씨 가족이 국가와 사건 담당 수사 검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필적 감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 중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일부 원고들의 패소 부분 중 수사과정의 개별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부분은 위헌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장기소멸시효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다”며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강씨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수사 과정 중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부분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강씨 청구를 배척한 바 있다. 불법행위 시점은 1991년인데 24년이 지난 2015년 11월 3일 소를 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8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 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정하는 사건의 피해자가 갖는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가 갖는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법원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수석검사), 김형영(당시 국과수 감정인) 씨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에서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한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5년 대법원이 ‘유서 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뒤, 소송을 지원한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씨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 강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 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자살방조)로 구속 기소돼 옥살이한 사건이다.

강씨는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유서 필적과 강씨 필적이 같다’는 국과수 필적 감정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의 잇따른 분신이 계속되자 정권 차원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조작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조사를 통해 유서 필적이 강씨가 아닌 김기설 씨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를 내놨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과수에 필적 감정을 다시 의뢰했고 2007년 11월 김기설 씨 필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이후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5년 5월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에 2015년 11월 강씨는 국가와 수사기관 관계자 등을 상대로 총 3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7년 7월 1심은 국가와 국과수 감정인 김씨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배상금 8억7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하지만 수사책임자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과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의 행위는 시효가 지난 탓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이듬해 2심은 배상 책임을 추가로 인정해 강씨에게 지급될 배상금은 2억6000만원 증액됐다. 2심은 배상 책임자가 국가뿐이라고 봤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감정인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