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산업의 아이폰 모먼트가 시작됐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입니다. 아이폰이 스마트폰과 모바일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것처럼 AI의 확산이 또 다른 미래를 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AI 챗봇 ‘챗GPT’였습니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챗GPT’는 인간이 컴퓨터에 입력한 문장을 인식해 인간처럼 답변하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입니다. 출시 2개월만에 이용자 1억명을 모으며 IT업계에 신드롬을 일으켰죠. 전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습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AI의 확산이 10년간 세계 경제(GDP)를 7% 성장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만큼 생성 AI가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조사업체 더 브레이니 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86억달러(11조원)였던 생성 AI 시장은 연평균 36.1%씩 성장해 10년 후인 2032년엔 1886억(244조원) 규모가 될 전망입니다.
|
◇20년간 구글 장악한 검색 시장, 패러다임 전환 중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AI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검색 시장입니다. 챗GPT 열풍엔 검색 시장이 바뀔 것이란 기대감이 숨어 있었습니다. 기존 검색은 키워드를 치면 나오는 수많은 검색 결과에서 원하는 결과를 일일이 찾아야 했지만, 챗GPT는 질문을 하고 결과를 단번에 얻을 수 있으니까요.
오픈AI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올초 검색엔진 ‘빙’에 챗GPT 기술을 결합하며 지난 20년간 구글이 장악해온 검색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위협을 느낀 구글도 부랴부랴 챗GPT의 대항마로 ‘바드’를 내놓았죠.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시점에서 검색 시장의 판도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구글은 검색 시장의 92% 가량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색 패러다임 자체는 바뀌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생성 AI 부상으로 검색 시장의 핵심 가치가 검색 효율성에서 생성 정보의 신뢰성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생성 AI 기능이 결합된 검색 포털 서비스가 AI 시대의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구글은 이미 기존 검색창과 달리 바드가 추천하는 검색 결과가 가장 위에 보이는 방식으로 검색창 개편을 준비 중이고, 네이버도 7~8월 중 유사한 방식의 대화형 검색 서비스 ‘큐’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
◇“2030년 AI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 등장”
생성 AI는 검색 시장을 떠나 전 산업을 성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생성 AI는 제조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유통 분야에선 광고 마케팅·고객센터 업무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가트너는 2025년까지 대기업의 마케팅 메시지 중 약 30%가 ‘합성’ 문장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작년엔 2%에 불과했습니다. 국내에선 최근엔 삼성생명이 광고 캠페인 ‘좋은 소식의 시작’ 배경음악(BGM)을 AI 스타트업 포자랩스와 함께 생성 AI로 제작해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개인 맞춤형 금융·투자 상품을 개발하거나 실시간으로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립하는데 생성 AI가 활용될 전망입니다. 엔비디아는 최근 조사에서 “글로벌 금융회사의 20%가 대화형 AI를 도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미디어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2030년엔 AI가 콘텐츠의 90%를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가 최소한 1편은 개봉될 것이라는 전망(가트너)도 나옵니다.
챗GPT가 ‘플러그인’을 통해 외부 서비스까지 연동하면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에 답만 하던 챗GPT가 장보기나 호텔 예약 등 다른 앱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든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한 차원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앱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처럼, 챗GPT가 ‘AI 시대 앱스토어’가 될 수 있습니다.
◇‘환각’ 현상 숙제…저작권 분쟁도
기대만큼 숙제도 많습니다. ‘환각’ 현상은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로 꼽힙니다. 현재 챗GPT 같은 LLM은 인간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도 엉뚱한 거짓말을 하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생성 AI의 답변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도 생성 AI를 출시하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구글 바드의 프롬프트(명령어) 입력창 하단엔 “바드가 부정확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정보를 표시할 수 있으며, 이는 구글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써있습니다.
생성 AI가 인간이 만든 콘텐츠 등을 가져다 학습하다 보니 저작권, 정보 유출 문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이미지·동영상을 제공하는 게티이미지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스테이블 디퓨전을 개발한 스태빌리티 AI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오픈AI도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로 AI를 훈련시키면서 저작권 등을 침해했다며 미국 로펌 클락승로부터 소송을 당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6월 개인 정보나 비공개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의 입력을 금지하는 ‘챗GPT 등 생성형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최근엔 AI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AI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는 “AI가 기후변화보다 인류에게 더 시급한 위협”이라며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제안하는 것은 쉽지만, AI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AI 발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빠르단 의미입니다. 미 IT업계에선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6개월 정도 AI 개발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럽 등에선 AI 보안과 윤리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