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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항쟁은 1986년 10월 28~31일 전개된 학생 민주화 운동이다. 26개 대학 학생 2500여명이 건국대에 모여 반독재 시위를 하던 도중 전투경찰이 기습진압해 1525명이 연행되고 1288명이 구속돼 사상 최대 규모의 학생운동 진압 사례로 기록됐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는 지난해 5월 이 사건을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인권침해”라며 피해 인정 결정을 내렸다. 다만 80명의 불법구금만을 인정하고 국가에 공식사과와 피해회복·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고용규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 상임공동대표는 “건대항쟁은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했던 정의로운 투쟁이었다”며 “오늘 13명의 재심 신청은 무죄를 넘어 1525명의 명예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학생들은 불법구금과 폭행, 가혹행위 등 강압수사를 당했고, 고문으로 만들어진 조서는 유죄의 증거가 됐다”며 “이번 국가배상은 국가가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파괴된 국민의 삶에 책임을 지는 헌법적 절차이자 의무”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진화위와 국회에 직권조사 및 입법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진화위는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건대항쟁 전체에 대한 직권조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회 차원에서도 건대항쟁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완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 공동위원장은 “재심은 단순히 옛 판결 하나를 다시 들여봐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며 “그날의 청년들이 범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법의 이름으로 다시 확인받는 과정”이라 강조했다. 이어 “특혜를 구하는 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와 공정한 재판,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구한다”며 “사법부는 이 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심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서혁진 씨는 “당시엔 평화로운 집회였고 경찰도 통제하지 않다가 해산 무렵 갑자기 최루탄을 쏘며 몰아붙였다”며 “먹을 것 하나 없이 3박 4일간 갇혀 있다가 끌려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만행이라고 이미 판명됐다”며 “민주공화국이라면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직권조사를 통해 국가폭력이었음을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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