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따라 로즈가든 입구에 도착하자 시야 전체가 멈췄다. 그 앞엔 압도적인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720품종, 300만 송이의 장미가 굴곡진 지형과 계단식 구조를 따라 겹겹이 피어 있었다. 붉은 장미가 아니라, 분홍과 오렌지, 자주와 라벤더색까지 세계 각국의 장미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그 장미들은 단순히 ‘보이는’ 꽃이 아니라, 향기와 색채, 심지어 정원의 구조와 기후를 스스로 인식하며 존재하는 듯했다.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처럼, 사람보다 먼저 그 자리를 지켜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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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는 이날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로즈가든 그룹 투어를 진행했다. 해설을 맡은 이는 이번 로즈가든을 총괄 기획한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이었다. 이 그룹장은 장미길 앞에 서서 “지금 보시는 이 품종은 ‘블루문’입니다. 은은한 라벤더빛과 강한 향이 특징이죠”라며 한 송이 장미를 직접 가리켰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장미 사이를 안내했고, 기자들은 그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다. “여기 보시는 ‘만첼라’는 독일에서 온 품종으로, 병충해에 강하면서도 이중 색감을 띠는 게 특징입니다.”
그는 로즈가든의 공간 배치를 ‘3단 입체 정원’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는 장미의 군락감을, 중간에서는 수종과 컬러의 조화를, 가장 높은 곳에서는 전체를 내려다보며 장미의 파노라마적 스케일을 경험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이어진 설명에서 그는 “정원은 흐름(flow)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꽃의 배치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동선이 감정을 어떻게 흔드느냐죠. 그래서 곡선형 미로, 벽면 포토존, 그리고 음향 포인트까지 넣었습니다.”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번갈아 들었다. 장미들 사이를 걷는 동안, 간헐적으로 장미 이름을 적은 팻말과 QR 코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 QR을 찍으시면 해당 장미의 유래와 관리법, 개발 배경까지 나옵니다. 에버로즈 40여 품종 중 일부는 국내에서 처음 상업화에 성공한 품종이에요.” 이 그룹장의 설명엔 정원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간담회에서 밝힌 것처럼 올해 장미축제는 단순한 꽃 구경을 넘어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성되었다. ‘로로티’(RoLoTi). 로즈가든 로열 하이티의 약자이자, 장미와 하이티, 사막여우 캐릭터가 중심이 된 몰입형 체험 세계다. 장미 아래에는 다리아송 작가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장미성 파사드와, 갑빠오 작가와 협업한 대형 사막여우 키네틱 조형물이 있었다. 관람객들은 이를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포착했다. 일부는 대형 사막여우 조형물 아래에서 가족사진을 남기고, 누군가는 장미성 파사드 앞에서 커플 인증샷을 남겼다. 그 모습들은 마치 꽃을 배경으로 한 하나의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작은 공연 같았다. 장미는 무대 배경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일상을 장식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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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장미 그 자체였다. 에버랜드는 2013년부터 자체 장미 품종 개발을 시작해 올해까지 40품종을 선보였다. 이른바 ‘에버로즈’라 불리는 장미들은 연중 3회 이상 개화하며, 병충해에 강하고 색과 향이 고르게 발달된 장미들이다. 대표 품종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국제장미콘테스트 4관왕 수상에 이어, 2024년에는 항산화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이 SCIE급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올해는 일본의 정원 장미 시장에 수출되며, 정원형 장미의 해외 진출이라는 쾌거까지 이뤘다.
이 장미는 한 해 한철 피고 지는 꽃이 아니다. 정원에 살아 숨 쉬며 사계절의 흐름을 품고 있는 식물이며, 스토리와 기술이 얽힌 문화자산이다. 장미는 더 이상 일시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산업과 예술, 정원과 관광, 브랜딩과 경험의 교차점에 놓인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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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을 걷던 한 중년 부부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결혼 전에 이 정원에서 처음 데이트했어요. 지금은 손녀 손을 잡고 다시 왔네요.” 40년간 같은 장소, 같은 꽃, 그러나 전혀 다른 시간이 피고 있었다. 장미는 다시 폈고, 사람은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어느새 햇살은 기울어 정원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장미는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 세대를 잇는 시간의 서사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정원의 미학을 완성시키는 건 단지 시각적 감상만이 아니었다. 에버랜드는 이번 로로티 축제를 준비하며 식음료(F&B) 콘텐츠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로즈가든 바로 옆에 위치한 쿠치나마리오 레스토랑에서는 유럽 정원 문화의 정수인 애프터눈 티 세트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2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의 코랄 컬러 티웨어 세트에 담긴 티 메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콘과 파이, 마카롱이 장미잎처럼 배열되어 있었고, 티에는 식용 장미잎이 떠올라 있었다. 이곳에서 ‘꽃을 마신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새롭게 문을 연 쿠차나 마리오에서는 상큼한 레드베리 티에 장미꽃 모양 얼음과 식용 장미를 더한 ‘로즈베리 아이스티’가 인기였다. 카페 옆에는 테마파크의 정석, 츄러스 상점도 마련되어 있었다. ‘로로티 하트 츄러스’와 ‘로로티 텍스트 츄러스’는 그 자체로 인증샷을 유도하는 미식 콘텐츠였다. 이곳에서 장미는 보는 것과 냄새 맡는 것을 넘어, 입에 머물고, 손에 잡히고, 일상에 들어오는 경험으로 확장되었다. 장미는 이곳에서 하나의 맛, 하나의 감정이 된다.
에버랜드 로즈가든은 단순한 축제 공간이 아니다. 장미라는 클래식한 식물을 통해 시간과 감정, 그리고 브랜드 정체성을 완성한 플랫폼이다. 이곳은 단지 꽃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이 다시 피어나는 정원이다. 그러니 이 장미가 지기 전에, 당신도 한 번쯤 이 정원을 걸어보길 권한다. 정원의 향기 속에서,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이미 다시 피어난 감정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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