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데다 내재가치도 없어서 가치를 저장하는데 그리 유용한 수단이 아닙니다. 법정화폐보다는 그나마 금(金)을 대체하고 있는 투기적인 자산일 뿐입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간밤 국제결제은행(BIS)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비트코인에 대해 내놓은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다시 살아나려던 가상자산시장 내 투자심리가 한참 꺾이고 말았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300% 이상 치솟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올 들어서도 이미 두 배나 급등하고 있다. 시가총액만 해도 1조1000억달러가 넘어서면서 누구도 더 이상 무시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됐고, 그러다 보니 비트코인을 두고 나오는 발언 하나하나에 가격이 급등락하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문제는 주류 금융권을 대표하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IB)들조차도 금융시장에서 비트코인이 가지는 필요성이나 위상에 대해 어떠한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씨티그룹은 월가에서 가장 일찌감치 비트코인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은 투자은행으로, 이달 초 무려 108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보고서를 통해 씨티는 “비트코인은 글로벌 무역에서 선호하는 통화가 될 수 있는 최적화된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면서 투자심리를 자극한 바 있다.
다만 씨티는 자본 효율성과 보험 및 수탁(커스터디),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비트코인을 둘러싼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트코인은) 주류 경제권에서 수용될 것인가, 아니면 투기로 인해 붕괴될 것인가 하는 결정적인 변곡점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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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도 씨티와 같이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리사 샬렛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주 보고서를 통해 “가상자산은 투자 가능한 새로운 자산계층으로 도약하는 문턱까지 와 있다”고 평가하며 “규제의 틀이나 개선되는 유동성 여건, 기관투자가들의 관심 증대 등으로 45년 전과 금(金)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이 주류 기관투자가 포트폴리오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봤다.
또한 “투자자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포트폴리오 내에 이 급성장하는 자산을 적절하게 노출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이달 중에 디지털자산 트레이딩 데스크를 새로 가동했고, 그로부터 얼마 뒤 BNY멜론은 자산운용 고객들에게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코메르츠방크 등은 비트코인에 부정적인 쪽에 서 있다.
BoA 글로벌 상품리서치팀은 “올해 비트코인의 총 수익률은 이미 비트코인의 짧은 역사 전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비트코인 채굴과 운영은 대단히 에너지 집약적이라 그에 사용되는 연간 에너지 소비량만 해도 네덜란드 한 나라에서 쓰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적절한 헤지수단도 아니며 공급 역시 흔히 ‘고래(Whale)’라고 불리는 몇몇 대형 계좌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코메르츠방크도 “비트코인은 순전히 투기적인 자산”이라며 진지하게 분석할 만한 가치조차 없다고 평가절하했고, 프랑스계 자산운용사인 아문디의 벵샹 모티에 부(副) CIO는 첫 가상자산 보고서에서 “주요 국가들의 규제당국이 적절한 규제를 설정하게 될 경우 비트코인은 끔찍할 정도의 가격 조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