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선상원·김성곤 기자]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한국 현대사를 주름잡은 3김정치가 막을 내린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의도 정치권에는 여전히 패거리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특히 4.13 총선을 앞둔 여야의 공천작업은 수준 이하의 막장정치를 그대로 보여줬다. 전문성, 도덕성, 경쟁력 등의 기준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계파와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가 공천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여야 어느 곳의 공천이 더 객관적이었는지 되물을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도토리 키재기다. 공천탈락 후보들이 당적을 옮기거나 탈당 이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與, 친박·비박 극심한 줄다리기 속 공천파열음 속출
새누리당은 연초만 해도 180석 대망론을 내세웠다.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양분됐기 때문. 최근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유승민계와 비박계 무더기 낙천이라는 공천학살 논란에서도 수도권 지지율이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기 때문. 당 일각에서는 180석은 고사하고 이대로 가면 총선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할 정도다.
새누리당 공천은 최고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박계가 주도하고 있다. 공천과정에서 공관위와 최고위가 수차례 파행과 재개를 거듭하는 등 온갖 파열음이 끊이지 않았다. 계파이익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려는 협상이 난항을 겪었기 때문.
결국 새누리당 공천은 상처만 남겼다.. 가장 큰 상처는 상향식 공천이 물거품이 된 것. 경선지역도 거의 대부분 정치신인이 패하고 현역 의원이 생존했다.
21일 기준으로 새누리당은 전체 253개 지역구 중 경선없이 공천을 확정한 후보만도 무려 108명으로 40%가 훌쩍 넘는다. 사실상의 전략공천인 셈이다.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공언했지만 공수표로 돌아갔다. 이는 친박계인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공천 칼자루를 쥐면서 이미 예고됐던 것. 공관위 내부에서도 계파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극심한 내분이 이어지면서 파행이 거듭됐다.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을을 제외하고 공천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새누리당의 공천 성적표는 계파간 이익이 철저히 안배됐다. 김무성계는 거의 전원 생존하고 친박계 역시 일부 탈락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또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이인제·김을동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는 물론 황진하·홍문표·박종회 등 공관위원 대부분도 공천을 확정지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 의원과 가까운 이른바 유승민계와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역시 대거 컷오프됐다. 공천탈락의 칼날이 기득권이나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겨냥한 것. 결국 공천탈락에 반발한 유승민와 친이계는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압박하면서 새누리당의 총선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더민주, 친노 사라지니 친문 점령…국민의당, 계파정치 한계
야권도 패거리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호남민심 악화, 문재인 대표 사퇴문제를 놓고 친노계와 비노계가 극한 대치를 벌이다 결국 갈라섰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양분된 뒤에도 당내 계파 갈등은 여전하다.
더민주는 김종인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총선 승리를 위해 친노 패권과 운동권을 상징했던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친노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유인태 정청래 전병헌 이미경 오영식 강기정 임수경 김현 의원 등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들 친노그룹과 범주류인 정세균계를 대거 물갈이했다고 해서 계파정치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친문계가 대신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우윤근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윤후덕 김경협 윤호중 의원 등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 모두가 살아 남았다. 김병관 표창원 양향자 조응천 등 20여명에 달하는 영입인사들도 대부분 지역구 공천을 받아 친문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총선 때문에 친문계가 엎드려 있지만, 총선 후 문 전 대표가 대선행보를 본격화하면 다시 당권을 잡아 패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민주 관계자는 “이번 공천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측근들은 거의 공천을 받지 못한데 반해 친문계가 가장 큰 세력으로 몸집을 불렸다”며 “친노계와 비노계가 극한 대립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친문계와 비문계로 나뉘어 다시 당권을 놓고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새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도 계파정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당세 확장과정에서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 박주선 의원의 통합신당, 권노갑 정대철 전 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 동교동계가 결합돼 당내 권력을 균점하고 있는 상태다. 언제라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안철수계와 천정배계는 측근들의 공천 문제를 놓고 거칠게 다퉜다. 이 과정에서 천 대표측의 김영집 광주시당 공동위원장 등이 안 대표측 후보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며 공천심사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탈당했다. 또 서울 관악을도 안 대표 측근인 박왕규 후보를 단수 공천하려다 천 대표측의 김희철 전 의원과 이행자 전 서울시의원이 강력 반발하자, 숙의선거인단 경선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비례대표 공천도 분란거리다. 안 대표가 영입한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포함해 박인복 비서실장과 박선숙 사무총장,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 등이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천 대표 측에선 박주현 최고위원, 장환석 사무부총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양측간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