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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 하락에도 소비 안 늘었다
유가는 지난 1년새 거의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석유와 가스가 저렴해질수록 소비자에게는 긍정적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골드만삭스의 분석을 인용, 휘발유 가격 하락으로 인해 미국인들 전체적으로 1250억달러(137조원)의 감세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만약 지난해 자가용에 기름을 가득 채울 때 100달러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같은 양을 55달러에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이 반드시 경제에 긍정적 요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가 하락으로 휘발유 가격이 떨어져도 미국 민간소비는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경험칙이 그 근거다. 실제 국제유가가 급락했던 지난 1986년 전후 2년간을 봐도 급락 이전에 평균 3.6%였던 개인 소비지출 성장률은 유가 하락후 2년간 오히려 1.8%로 반토막나고 말았다.
WSJ이 이코노미스트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내년도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6월 조사 때와 변함 없었다. 내년도 평균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인플레이션율이 0.8%포인트 각각 내려갔는데도 말이다.
◇ 에너지분야 성장-고용 `역풍`
무엇보다 에너지산업 비중이 워낙 큰 미국 경제를 감안할 때 유가 하락은 오히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셰일가스와 석유산업 혁명은 중산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최근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도 자체 보고서를 통해 미국인들 가운데 석유와 가스산업에 직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인구만해도 10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추정했다. 일례로 텍사스주는 지난 2009년 6월 이후 새로운 일자리가 40% 늘어났으며 지난해 텍사스주에 있는 휴스턴에는 캘리포니아보다 더 많은 집이 건설됐다. 이는 에너지산업 붐 덕분이었다.
또 유가 폭락은 에너지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회사들이 석유를 생산해도 수익이 낮아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코너코필립스와 마라톤 오일 등은 올해보다 내년 자본지출 규모를 20% 정도 줄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뿐 아니라 중소형 셰일가스 개발업체들의 투자 감소나 파산 등은 더 가파르게 나타날 수 있다.
지난달 미국내 원유 시추시설 신규 허가 건수도 전년동월대비 40%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총 자본지출 성장의 35~40%가 에너지와 관련 있다고 보고 있어 최근 유가 하락은 기업 자본지출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지역 은행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텍사스에 있는 에너지회사의 대출을 줄이고 있으며 많은 은행들은 에너지 대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식들을 매각했다. 3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몇몇 은행의 대표들은 지속되는 낮은 유가를 우려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HS의 다니엘 예르긴 부사장은 “유가 하락이 우리 생각만큼 (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을 인용해 “최근 몇년간 미국 경제 성장의 많은 부분은 에너지 혁명에 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맨해튼연구소는 미국에서 원유와 셰일가스 붐이 없었다면 국내총생산(GDP)이 지금보다 매년 3000억~4000억달러 줄어 미국 경제가 여전히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예르긴 부사장은 “기업들은 낮은 유가 때문에 15~20% 비용 절감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해 해고는 곧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