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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10일 영협에 따르면, 김지미는 지난 7일 오전 4시 3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영협이 고인의 유족 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사로 알려졌다.
영협 측은 “평소 심폐소생술을 원치 않아 하셔서 약물 치료를 했으나 극복을 못하셨다”고 설명했다.
당초 영협 측은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었으나 미국 현지에서 장례 절차를 조용히 마무리하길 바라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10일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완료됐고 오는 12일 장례 절차를 마칠 예정이다.
영협은 대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고인의 금관문화훈장 추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약 700편의 작품에 출연한 은막의 스타였다. 대표작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1959), ‘바보온달과 평강공주’(1961), ‘춘향전’(1961), ‘장희빈’(1961), ‘이수일과 심순애’(1965), ‘홍도야 울지 마라’(1965), ‘토지’(1974), ‘비구니’(1984), ‘티켓’(1986) 등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고인은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 등 시상식을 휩쓸었다.
연기 외에도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영화계의 정책 및 행정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1985년 ‘지미필름’을 창립해 제작에도 나섰다. 총 4번의 결혼과 이혼 등 화려하지만 굴곡진 개인사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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