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한 때 반짝 빛나는 존재보다는 매일 쌓아올린 업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퍼듀대학교에서 항공학을 전공한 암스트롱은 비행사를 꿈꾸며 해군 비행학교에 진학했다. 암스트롱은 훈련 중인 지난 1950년 6·25전쟁에 제트기 조종사로 78차례 출격하며 활약했으며 1955년 비행학교 졸업 후 경력을 인정받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입사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항공우주 산업을 경쟁적으로 강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주비행사 앨런 쉐퍼드를 지구궤도에 보내는데 이어 본격적인 달 탐험을 계획했다.
출중한 비행 실력을 인정받은 암스트롱은 1966년 유인우주선 ‘제미니 8호’ 선장으로 무인우주선 아제나와 도킹에 성공했으며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다.
암스트롱은 NASA에서 은퇴한 후 미국 신시내티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 교수를 지냈으며 2012년 심장관상동맥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미국에서는 암스트롱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한 뒤 대서양 바다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