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달린집',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강경록 기자I 2020.07.15 14:35:43
지난 9일 방영한 tvN ‘바퀴달린집’에서는 전남 담양의 대나무숲에서 출연진들이 화기를 이용한 바비큐를 즐기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나갔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직장인 김현수(37·가명)씨는 최근 케이블채널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출연자들이 아직 개장도 안한 강원도 고성의 삼포해변 등에서 취사와 야영하는 장면에서다. 그는 “방송에서는 프로그램 촬영 핑계를 대면서 불법 야영을 거리낌 없이 내보내는데, 언론에서는 쓰레기 투척 등 무질서한 행락객을 탓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방송을 보고 있으면, 법 지키며 캠핑을 하는 순진한 사람들은 속은 기분이 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 방송사 캠핑 프로그램, 불법 야영 조장 ‘논란’

최근 각 방송사에서 방송 중인 캠핑 소재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일 방송한 tvN ‘바퀴달린집’에서는 제주 머체왓숲과 전남 담양의 대나무숲에서 취사를 하며 야영을 하는 등 캠핑을 하는 장면을 담았다. 출연진은 직접 제작한 캠핑카에서 숙식하며 제주의 청정 자연을 소개했다. 또 담양에서는 직접 불을 피워 바비큐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됐다. 이전 방송분에서는 아직 개장도 하지 않은 해수욕장 등에서 야영을 하는 등 모습이 그대로 나가기도 했다.

‘바퀴달린집’ 제작진은 자막으로 ‘해당 장소에서의 취사는 지자체와 협의해 허가를 받았습니다’라는 내용의 고지를 했다. 그럼에도 일각의 시청자들은 이들의 야영 및 취사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제주는 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대나무 숲은 화재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네이버 인기 블로그인 차박캠핑클럽에는 강원도 고성 삼포해변에서 2박3일간 캠핑을 하는 모습을 방영한 tvN ‘바퀴달린집’의 행태를 성토하는 시청자의 글이 올라왔고 ‘이런 방송을 보면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따라하기 마련’, ‘일반인에게도 허가한 곳으로 방송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 등의 댓글이 달렸다.

국내법상 정부나 지자체가 허가한 곳이 아니면 취사와 야영을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산림보호법·자연환경공원법·자연공원법·소방법·하천법 등에 의해서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에서는 야영과 화기를 사용하는 취사를 금지하고 있다. 즉 지리산이나 설악산부터 청계산·관악산 같은 도시자연공원에 이르기까지 공원 구역은 산에서 잠을 자거나, 버너 같은 화기를 사용할 수 없다. 국립공원 대피소 취사장이나 야영장처럼 지정 장소에서만 화기를 사용한 취사가 가능하다. 하천법에 포함된 하천에서도 야영과 취사가 모두 금지다. 공원이 아닌 산에서는 산림보호법에 의해 취사만 금지한다. 야영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화기 사용은 금지다. 만약 산림 소유주의 허가가 있다면, 도시락을 먹으며 텐트치고 잠을 자는 것은 가능하다. 그 외의 사유지 등에서도 야영과 취사를 금지하고 있다. 야영지를 구축하면서 자연을 훼손하고, 취사로 인한 화재 위험과 쓰레기나 오물, 배변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장우가 경북 울진의 한 해변에서 캠핑카를 세워두고 캠핑을 하는 모습
◇여행·캠핑 프로그램 넘쳐나지만, 법규 준수는 ‘미흡’

최근 코로나19로 여행을 하기 어려운 국민들에게 캠핑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만들어나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는 점이 캠핑이 주목받는 이유다.

방송에서 여행과 캠핑은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다양한 장르의 캠핑 프로그램이 선보이고 있다. KBS2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부터 지난해 인기 걸그룹인 핑클이 출연한 JTBC의 ‘캠핑클럽’ 등이 인기를 끌었다. 김병만을 중심으로 한 SBS ‘정글의 법칙’도 캠핑 프로그램의 한 형태다. 인간의 손이 타지 않은 극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캠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캠핑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도심 밖의 풍경과 스케일 있는 볼거리들은 코로나19로 지친 일상과 건물들로 꽉 막힌 풍경에 지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제는 방송 의도와 다르게 캠핑 프로그램이 불법 야영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방송한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배우 이장우가 캠핑카를 몰고 경북 울진의 후포해변에서 취사와 야영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방송에서 이장우는 바닷속에서 직접 홍합 등을 채집해 취사와 야영을 했다. 방송 후 포털 등에서는 ‘이장우, 동해 캠핑 어디?’ 등의 문의가 올라오는 등 관심이 이어졌다. 이후 국립공원, 해수욕장, 하천 등 경치가 좋은 곳에서 취사와 야영을 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분별한 방송이 잘못된 야영 문화를 시청자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환 캠핑아웃도어진흥원 이사는 현행법대로라면 합법적인 야영장에서만 취사와 야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에서 국립공원이나 사유지 등에서 서슴없이 취사와 야영하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면서 “방송상 자막 등을 통해 ‘촬영을 허가받았다’고 고지하더라도, 현행법에는 사유지 내에서는 야영 외 불을 피우는 취사행위는 금지되어 있다는 점 등을 방송사 관계자분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아마 ‘바퀴달린집’ 출연진도 자신이 하는 행동이 ‘불법’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바퀴달린집 4회 프리뷰
바퀴달린집 5회 프리뷰
바퀴달린집 1회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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