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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가 도착한 뒤 연결되는 탑승 계단 차량은 높낮이 조절조차 되지 않았다. 여객기 출구보다 70㎝는 높게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여객기의 한 남성 승무원은 “이렇게 열악한 곳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선 듯 섭씨 36도의 푹푹 찌는 날씨 속에서도 공항 앞에는 필리핀군 중부사령부와 최초 파병된 아라우(ARAW)부대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부대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군 관계자는 “처음에 왔을 때 이 공항 건물은 지붕이 없었다. 태풍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며 “우리가 이곳부터 복원하려 했으나 필리핀 정부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다고 해 직접 수리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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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달리다보니 레이테주 동부에 위치한 ‘아라우 부대’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컨테이너 건물 수십 채가 들어서 있다. 집단 컨테이너 촌이다. 아라우 부대는 지난해 12월 28일 타클로반에 주둔을 시작했다. 주둔 이후 아라우 부대는 현지의 학교와 병원, 경찰서, 법원, 의회, 양로원 등 평균 1주일에 한곳의 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레이테주 팔로(221㎢), 타나완(78㎢), 톨로사(23㎢) 지역을 대상으로 29곳의 건물을 수리 보수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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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관계자는 “당시 한국군이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임무를 수행한 지 몇 달이 지나면서 한국군의 활약에 감동하는 분위기다. 유엔 관계자와 필리핀 합참의장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24일 아라우 부대는 현지에서 생존해있는 6·25 전쟁 참전용사 4명과 가족, 사망한 참전용사의 가족을 초청해 6·25 전쟁 상기행사를 열었다. 강당 외부에는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한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당시 7420명의 장병을 파병해 112명이 전사하고, 4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필리핀의 희생을 우리의 땀으로 갚겠다는 의지로 아라우 부대 장병들은 오늘도 재건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6·25 전쟁 참전용사 도밍고 아가스(89)씨는 “(한국군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건가?”라고 물었다. ‘임무를 마치고 오는 12월 이곳 필리핀을 떠난다’고 답해주자 그는 “더 남아 있으면 안되겠냐”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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