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지난해 4월 어느 날 오후 2시께 경기 성남시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택시 한 대가 앞으로 끼어들었다. 화가 난 A씨는 택시를 앞질러가서 차를 세웠고 이 바람에 택시도 설 수밖에 없었다. 왕복 8차선의 대로변이었다.
차에서 내린 A씨는 택시에 다가가 운전자에게 고성으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당시 택시 뒷좌석에는 6살과 7살 난 아이 두 명이 엄마와 함께 타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애가 들으니 욕하지 말라고 했지만, A씨는 듣지 않았다. 엄마는 8차선 대로변에서 내려 아이들 귀를 손으로 막았지만, 애들은 A씨의 욕을 다 들었다.
A씨는 택시 기사를 협박하고 이 과정에서 뒤에 탄 아이 둘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아동 학대죄까지 유죄 판결이 나올지가 관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아이들은 당시 A씨가 한 욕을 따라 하는가 하면, 악몽을 꿨다.
심리를 마친 법원은 A씨의 행위가 운전자 협박과 더불어 아동 학대에까지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피해 아동 둘은 이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며 “A씨는 피해 아동의 정신 건강과 정서적 발달에 해를 끼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아이의 엄마를 변호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조수아 변호사는 “아동에 대한 직접 폭언뿐 아니라, 아동이 듣는 장소에서 이뤄진 간접 폭언도 아동 학대라는 걸 인정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유사한 사건에서는 아동 학대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2019년 7월 제주에서 일어난 이른바 ‘제주 카니발 사건’이 사례다. 당시 카니발을 몰던 가해자가 차선변경 시비 끝에 피해자 차량을 멈춰 세운 뒤 피해자 운전자를 폭행했는데, 피해자 차량 뒷좌석에서는 당시 5살과 8살 난 자녀 둘이 타 있었다.
가해자는 유죄가 인정돼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당시 적용된 죄명은 특가법상 운전자 상해 혐의이고, 아동 학대죄는 적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