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돼지고기 뒤 새끼돼지 내려쳐 죽이는 도태가 있다[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3.03.20 17:06:14

국민 93.7%·양돈농가 80.7% "농장동물 복지 중요"
동물복지 전환의사 과반 넘지만, 열악한 지원에 발목
정부, 동물복지 세부과제 77개 中 6개가 농장동물 정책
동물단체 "전국 농장동물 사육환경 실태조사 실시" 촉구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전국에서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농장동물은 약 2억4654만 마리다. 좁은 국토에 수억 마리의 소, 돼지, 닭, 오리 등을 기르는 탓에 대다수의 축산 농가는 공장식 축산 형태를 취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경제성 등을 이유로 공장식 축산체제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 한 수많은 농장동물을 산 채 땅에 파묻는 ‘살처분’이나 새끼돼지를 망치로 때려 도태시키는 ‘관행축산’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파괴는 물론 축산노동자들의 삶과 농장동물의 권리는 현저히 침해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폭로됐던 새끼돼지망치 살해사건.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인 해당 업체는 대기업에 돈육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동물단체 제공)
◇새끼돼지를 망치로 살해했다…관행축산 변화해야

지난 2018년 11월 30일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동물자유연대는 경상남도 사천에 위치한 농가에서 발육이 느리거나 병에 걸려 상품성이 떨어진 새끼돼지들을 망치로 때려 도태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동물단체 측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에선 농장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40여 마리의 돼지를 좁은 공간에 몰아놓고 돼지들 사이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이 담겼다. 또 다른 직원은 쓰러져 있는 돼지들에게 다가가 확인사살을 하듯 때리기도 했다.

한국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값싼 돼지고기 공급 이면에는 최대한 적은 돈을 들여 상품성 없는 새끼돼지를 살처분하는 관행축산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밖에도 달걀을 낳을 수 없어 산 채로 갈려 죽는 수평아리, 우유 생산을 위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젖소 등 농장동물이 축산·낙농업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 문제가 널리 알려지며 농장동물 복지에 관한 한국사회 인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축전염병 유행과 농장동물 대량 살처분 △살처분 침출수 유출로 발생하는 지하수 및 토지 오염 △살충제 계란 파동 등 먹거리 안전성 문제 △공장식 축산에 소요되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과 오염물질 배출(메탄·암모니아·항생제·호르몬제·화학비료 등) 등 숨겨진 사회적 비용이 가시화되면서다.

◇“동물복지로 전환하고 싶지만” 열악한 재정이 발목

사단법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 16일 발표한 ‘국민·양돈농가 2022년 농장동물 복지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3.7%는 농장동물의 복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양돈 축산업 종사자 14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80.7%가 복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재원이다. 2022년 조사에서 양돈농가 종사자의 54.5%는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의 전환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나 재정 부족 등의 이유로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례로 양돈농가는 오는 2029년까지 어미돼지의 ‘스톨사육’이 전면 금지됨에 따라 군사시설로 전환해야 하는데 재정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스톨사육이란, 어미돼지를 오직 눕고 일어서는 동작만이 허락된 작은 스톨에 가둔 채 인공수정을 시켜 새끼돼지를 생산하게 하는 사육 방식이다. 업계에 따르면, 어미돼지는 약 3~4년간 평균 7회 새끼돼지를 생산한 뒤 도살장으로 팔려간다.

국내서 두 번째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경기 이천의 성지농장의 모습. 성지농장의 돼지고기는 백화점 등으로 출품되며 평균 돼지고기보다 20%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성지농장 제공)
그러나 지난 2020년 개정된 축산법 시행령에 따라 양돈농가는 어미돼지가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군사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육류 가공업체인 돈마루의 안형철 대표는 지난 16일 농장동물 복지방안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에서 “스톨 하나당 200~300만 원이 든다. 농장 전체로 본다면 10억이 넘게 든다”며 정부 재정지원과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어웨어 조사에서도 양돈 농가의 32.8%는 스톨사육을 전환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대한한돈협회의 ‘2022년 한돈농가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농가의 55%가 스톨사육 전면금지를 모른다고 답했다. 군사 사육시설 전환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양돈농가는 68.9%에 달했다.

◇“동물복지 세부과제 77개 중 농장동물은 6개”

안 대표의 말처럼 정부의 농장동물 복지 정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동물복지축산 인증제’에 참여한 양돈농가는 0.3%(16개소)에 불과하다. 인증제가 농장동물 복지의 적절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 것이다. 업종별로는 △신란계 20.2%(190개소) △육계 8.7%(131개소) △젖소 0.5%(26개소) △한우 0.001%(1개소)인 실정이다.

어웨어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7.3%는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생산된 축산물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최근 6개월 내 동물복지인증이 부착된 축산물을 구매한 적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36.4%에 불과했다. 농장주들 입장에선 인증제 도입과 같은 정부 지원을 신용할 수 없을뿐더러 상대적으로 비싼 동물복지축산품을 출하하면 판매량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즉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위해선 △소비자들의 가치소비 △급식 등 공공부문에서의 동물복지축산품 판로 확대 △적정 사육 면적과 두수를 고려한 동물복지인증제의 단계적 확대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가에 대한 컨설팅 및 정책자금·직불제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선 돼지 등 농장동물의 복지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윤미향 무소속 의원실 제공)
이에 대해 임영조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은 지난 16일 국회 토론회에서 “이번 정부에서 동물복지를 전담하는 조직이 생겨 관련 정책을 열심히 준비했지만, 정책의 무게는 반려동물 중심이었다”며 “작년 발표했던 동물복지 강화안의 77개의 세부과제 중 농장동물 복지 과제는 6개”라고 밝혔다.

임 과장은 그러면서도 △3년마다 갱신을 골자로 한 동물복지축산인증제 개편 △부화장·도살장·종축장 등 동물복지 인증제 적용 시설 확대 △축산농가·동물보호단체와의 지속적인 소통 등을 추진하며 농장동물 복지정책을 지속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농식품부는 우선 국내 모든 농장동물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드러내야 관련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며 전국 실태조사를 제언했다.

토론을 주최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미향 의원도 “전체 축산 농가에 대한 (농림부의)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며 “농장동물에 대한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예산이 필요하며 어떤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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