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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윳값 말고도 인상요인 많은데”…가격인상 제동에 유업계 ‘난감’

김범준 기자I 2022.09.19 16:34:39

원유생산비 ℓ당 52원 올라 원윳값 47~58원 인상 수순
농식품부 “원윳값 인상분에 비례해 우윳값 오르지 않아”
정부, 사실상 우유·유제품 소비자가격 인상에 제동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유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원유(原乳) 생산비 인상으로 낙농가가 유업체에 공급하는 원유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가 유업계의 급격한 우유가격 인상에 사실상 제동을 걸면서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올해 원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우유 가격이 정확히 얼마나 인상될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면서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인해 먹는 우유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박 차관보의 이날 발언은 계속되는 가공식품 물가 상승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유제품 소비자가격과 관련해 ‘팔목 비틀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박 차관보는 이날 “최근 원유 생산비가 리터(ℓ)당 52원 오른 만큼 올해 원유공급가격이 상향조정될 여지는 있다”면서도 “다른 식품의 원료가 되는 흰 우유 가격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올리더라도 물가에 영향이 적은 가공유 제품의 가격을 조정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오전 민생물가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예의주시 대상으로 식품업체를 직접 거론하며 “최근 일각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민생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의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며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식품 물가 점검반을 통해 동향을 일일 모니터링하고 업계와 가격 안정을 위한 협의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내세워 식품업계에 불공정 담합행위 여부 합동 점검 등 전방위적 압박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따른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우유 판매대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업계 “원윳값 외에도 가격인상 요인 많은데...”

정부의 방침에 대해 유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각종 원부자재 구매비용과 물류비, 환율 상승 등 상황에서 원윳값도 오르며 생산 원가 부담이 가중되지만 이를 주원료로 활용해 생산하는 흰 우유와 가공유 등 유제품 가격을 잇따라 올리기 어려워지면서다.

실제 주요 유업체들은 최근 생산 원가 부담이 늘며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매일유업(267980)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약 28.2% 줄어든 308억원을 기록했다. 남양유업(003920)은 상반기에 42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1위 서울우유는 올 상반기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 지난해와 비슷한 약 3% 영업이익률 유지에 그쳤다.

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년대비 원부자재 가격과 운송비, LNG(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 비용이 많게는 60% 이상 오르며 제조원가 부담이 커졌다”며 “생산 원가를 최대한 절감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원윳값이 올라도 우유 제품 가격 올리지 말라는 정부의 방침에)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낙농가에서는 최근 사료가격 인상 등 목장 운영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올해 원유 가격을 최대폭인 리터(ℓ)당 58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흰우유는 높은 생산 원가로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원윳값 협상에서 인상폭을 최소화하고 제품 판매가도 이에 연동하지 못하면 업계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달 중 원윳값 결정…유업계 고민 깊어져

원유 매입가는 오는 20일 낙농진흥회에서 논의를 통해 이르면 이달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원유 생산비는 ℓ당 52원이 올랐다. 시장에서 우유 수요량 반영 없이 낙농가에서 목장 운영과 원유 생산 비용만 고려한 현행 ‘원유 생산비 연동제’ 원유기본가격 산출식에 따르면 올해 ℓ당 47~58원 범위에서 원유 가격이 인상될 전망이다.

지난해 원윳값을 ℓ당 21원 인상했을 때 시중에서 팔리는 흰우유(1ℓ 제품 기준) 가격이 평균 150~200원가량 올랐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 원유 매입가가 ℓ당 약 50원이 오를 경우 흰우유 소비자가격은 300원대부터 500원 안팎까지 뛸 것이라는 관측이 따른다. 지난 2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현재 서울우유 흰 우유(1ℓ) 소비자가격은 전국 평균 2758원, 매일우유 오리지널(900㎖)은 2715원이다.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안은 지난 16일 생산자(낙농가)와 수요자(유업체) 등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해 내년 1월1일부터 전격 시행될 예정이다. 흰우유와 달리 가공유 등 기타유제품 생산용 원유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업체에 공급해 시장에서 저렴한 수입산 제품에 대응할 경쟁력을 키우자는 취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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