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정부가 현대상선의 고액 용선료 인하 협상 시기를 5월 중순으로 못 박으면서 현대상선이 해외 선주 등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현대상선이 5월 중순까지 용선료를 깎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가게 된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가능성은 용선료 인하의 주도권을 쥔 해외 선주들에겐 협상 타결을 위한 압박카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을 유지하는 데는 쥐약이 될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현대상선 입장에선 용선료 인하 협상과 해운동맹 가입 모두 놓쳐서는 안 될 구조조정의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그 딜레마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최종 시한은 5월 중순 정도로 예상되는데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안 되면 채권단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법정관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현대상선이 어느 정도의 용선료 인하가 필요한지 이달 중 선주들에게 최종적으로 통보할 예정”이라며 “채권단은 최종 제안서와 함께 채권단이 생각하는 마감 시한을 선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은 22개 해외 선주에게 컨테이너 34척, 벌크선 51척 등 85척에 대해 시세보다 4~5배 높은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다. 2026년까지 지불해야 할 용선료가 무려 5조원이나 돼 이를 깎지 못하면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셈이 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채권단은 해외 선주들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에서 실패해 법정관리로 갈 경우 해외 선주들의 손해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협상 타결에 여지가 있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상거래 자체가 정지되기 때문에 해외 선주들도 용선료를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 또 세계적인 해운업 불황에 배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배를 빌려줄 곳 또한 마땅치 않다.
정부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해외 선주들 모두와 용선료를 깎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70~80% 정도 해오면 상당 부분 진전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일부는 용선료 인하에 우호적인 곳도 있지만, 다른 선주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곳도 있고, 깎아줄 수 없다는 곳도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위한 압박카드인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가능성은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근 해양수산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해운동맹 가입 유지를 위해 아직 짝을 못 찾은 선사들에게 정부가 해운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산업은행은 조건부 자율협약에 돌입한 현대상선의 요청으로 비슷한 내용의 서한을 현대상선이 소속된 G6 멤버들에게 보냈다.
내년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을 앞두고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가 시장점유율 27.9%의 제1 얼라이언스 ‘2M’을 현 체제로 유지키로 했고, 중국 최대 해운사 코스코(COSCO)와 프랑스 CMA-CGM, 대만 에버그린, 홍콩 OOCL이 손을 잡고 새로운 동맹 ‘오션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2M`과 `오션`을 제외한 나머지 선사들과 제3의 동맹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내년 3월부터 해운동맹이 재편되는 만큼 올해 상반기내에는 양사 모두 동맹 체제 안에 가입돼야 한다.
현대상선 입장에선 용선료 인하 협상과 해운 동맹 가입 모두 조건부 자율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상선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을 당시 채권단 출자전환 등 자금지원의 선결 조건에 △고액 용선료 인하 협상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 외에 △해운동맹 가입을 포함했다.
정부 관계자는 “법정관리 가능성은 용선료 인하 협상에서 해외 선주들을 압박하는 협상용 카드가 될 수 있지만, 현재 자율협약에 들어간 것도 (해운동맹 가입에) 불리한 상황에서 법정관리로 간다고 하면 누가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가입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