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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는 재빨리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재정지출도 삭감하겠다며 조기 진화에 나섰다.
새해 들어 지난 5일 처음 개장한 모스크바 증시에서 달러당 59~61루블, 유로당 70~72루블 사이를 오르내리던 루블화 환율은 공식 연휴가 끝난 12일부터 빠르게 뛰기 시작해 13일 오후(현지시간) 장중엔 달러당 66루블, 유로당 78루블대까지 뛰어 올랐다. 14일에도 한국시간으로 오후 5시33분 현재 1달러당 66.2루블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 뿐만 아니라 증시나 채권시장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국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없어 국채금리는 급등해 이날 예정된 국채 발행 매각은 취소됐다. 또 러시아 주식시장에서도 투매가 일어나 13일에는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에서 한 달래 최대규모인 369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 정부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루블화는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한 뒤 “환율 안정을 위해 연초부터 우리가 보유한 외환보유고는 물론이고 금(金)보유고까지 일부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외환보유액을 3700억루블(약 6조600억원) 더 늘릴 것이며 정부 재량으로 줄일 수 없는 재정지출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출항목을 올해 10%씩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유지하면 한 해 3조루블 정도의 세수가 줄어든다”며 “당초 올해 예산상 재정지출을 11.7% 늘릴 계획이었지만, 이 증가율을 5%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경제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러시아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이는 투기등급 바로 윗 단계다. 시장에서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이달중 러시아 신용등급을 투기(정크)등급으로 강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개입해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러시아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에 나서 잠시 하락세를 막았지만 전반적인 위기 회복에는 충분치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정부가 환율을 방어할 카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달 당국은 기준금리를 17% 올렸으며 비공식적으로 수출업체들에게 벌어들인 달러를 매각하고 루블을 매입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만 환율 방어를 위해 거의 800억달러를 지출했다.
서방 국가들의 제재 조치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유가 하락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여 전문가들은 루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런던에 있는 SEB증권 퍼 헤머렌드 스트래티지스트는 “브렌트유는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지고 루블화는 달러대비 70~75루블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